사과를 한 입 베어 무는 상상을 해보니 다섯 가지 맛이 날 것 같았다. 달고, 시고, 쓰고, 짜고, 고소 또는 감칠맛을 느낄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사과 값은 왜 비싼 건가요?”라는 문자가 왔다. 잠시 고민 끝에 이렇게 답신했다.

① 작년도 작황(수확량 적음)
② 기후영향(작황 불안)
③ 생산비 상승(원자재 값 고공행진)
④ 수입과일 관세인하 효과 저조(간접요인)
⑤ 정부 관리부실 등 5가지가 복합 작용한 결과

제대로 된 답변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나름 최선을 다한 것이라 자위했는데, 뜬금없이 사과를 먹고 싶었다. 평소엔 사과를 애써 찾은 적이 없었고 그저 눈에 띄면 한 조각 베어먹는 정도였는데, 비싸졌다 하니 왠지 끌리는 것을 느끼며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별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 갑자기 출세하거나 부자가 되면 왠지 처음부터 달랐던 것으로 여기며 급 끌리는 심리와 같달까. 

점심식사 후 다섯 가지 맛이 난다는 커피를 마셨다. 다섯 가지 맛이 나는 커피라고 해서 티백 봉지별로 다른 맛 5개 중 하나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 잔 커피에 다섯 가지 맛이 다 들어있단다. 그 설명을 듣고 커피를 마시며 하나하나 맛을 음미해 봤더니 실제로 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단맛, 쓴맛, 신맛, 짠맛, 고소한 맛을 5미(味)라 하는데 이 중에서 가장 애매모호한 맛이 고소한 맛이다. ‘단쓴신짠’과 매운맛은 딱딱 드러나는 맛인데 ‘고소(구수)’의 정체가 미묘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감칠맛으로, 영어를 빌어 ‘바디감’ 따위로도 표현하는데 그 단어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이다. 

다섯 가지 맛을 흡입한 뒤 일어서는데 또 사과가 먹고 싶어졌다. 사과에게 무슨 일이 생겼길래 이리도 입맛을 당길까. 오로지 값이 뛰었다는 것 외에 사과가 바나나맛을 내거나 체리맛을 내거나 하다못해 사각형이나 오각형으로 모양을 바꾼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를 한 입 베어 무는 상상을 해보니 다섯 가지 맛이 날 것 같았다. 달고, 시고, 쓰고, 짜고, 고소 또는 감칠맛을 느낄 것 같았다. 이런 젠장.

커피에도 사과에도 사실은 5미(味)가 다 들어있다는 게 정설이다. 다만 먹는 이의 스스로 특정한 맛을 음미하는 것이고 상대적으로 미약한 맛은 처음부터 없는 것으로 느낄 뿐이다. 이런 쓸데 있는 상상을 하며 아침에 주고받은 문자를 보완해서 수정 답변을 보냈다. 사과가 갑자기 비싸진 이유는… 
‘개사과’의 후폭풍이다. 믿거나 말거나, 가끔은 사물과 사회의 연쇄 부작용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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