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제조업체 대표가 ‘발효와 숙성’을 같은 의미로 혼용되는 것에 불만을 표했다. 발효와 숙성은 매우 큰 차이가 있으며 그것을 명쾌하게 인지할 수 있는 이들만이 발효식품을 만들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그는 음식물의 발효 과정과 숙성 과정을 여실히 보고 있는 듯했다. 사실 숙성의 과정을 육안으로 볼 수는 없다. 발효는 효모의 작용이 눈에 드러나기 때문에 감을 잡을 수 있고 수치화할 수 있지만.

비슷하지만 다른, 두 원리를 몇 가지 방식으로 정리해봤다.

〔사전적 개념 차이〕

○발효(醱酵, fermentation)_ 복잡한 유기물이 곰팡이, 효모, 세균 등에 있는 효소의 작용으로 분해되어 간단한 다른 유기물로 바뀌는 현상.

○숙성(熟成, ageing)_ 식품에서 제조 직후의 향기가 시간의 경과와 함께 화학적·물리적으로 변하여 색깔과 함께 총체적으로 조화되는 현상.

이 설명을 보면 ‘바뀐다’는 것은 둘다 같은데 방식은 크게 다르다. 발효는 효소의 작용으로 분해되어 다른 유기물로 바뀐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 숙성은 ‘시간의 경과’를 강조한다. 숙성을 의미하는 영단어가 ageing이라는 게 포인트다. 숙성은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현장 개념으로 보면 명확하게 정리된다.

〔현장 개념 차이〕

○발효(醱酵, fermentation)_ 효모의 작용에 의해 알코올이 생기는 현상.

○숙성(熟成, ageing)_ 장기간 보관으로 좋은 것은 남고 나쁜 것은 나가는 현상.

알코올 요소가 생기는 게 발효이다. 영단어 fermentation에는 발효란 뜻 이외에 ‘소동, 흥분’이란 의미도 있다. 한자에는 술 주(酒)가 붙어 알코올 작용임을 알려준다. 뭔가 흥분되어 소동이 일어나는 강한 이미지가 발효에 실려 있다. 숙성은 반대로 차고(熟) 무르익어가는(成) 세월(ageing)의 이미지가 강하다.

“발효에 의해 알코올이 생긴 뒤 산소를 서서히 내보내는 게 숙성입니다. 아세트알데히드와 알코올은 얇은 막 하나를 두고 붙어 있다고 보면 되는데 이걸 분리하는 게 중요해요. 아세트알데히드를 완벽히 거둬내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서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고 숙성에 쓰이는 용기가 좋아야 하죠.”

아세트알데히드(acetaldehyde)는 알코올에 포함된 독성 물질이다. 그것이 모든 알코올에 동전의 뒷면처럼 붙어 있다는 얘기다. ‘얇은 막을 사이에 두고’는 제조자 고유의 표현. 마치 인생의 원리를 보여주는 것 같다. 발효에 대해서도 덧붙인다.

“발효를 만드는 주인공은 효모, 효모가 만들어내는 효소의 절대 강적이 초산균인데 이 초산균이 효모가 왕성할 때는 맥을 못 춰요. 효모의 힘이 약하면 초산균이 삽시간에 점령해 효소를 없애버리죠.”

발효가 과하게 되면 둘 중 하나가 된다. 하나는 부패해 썩는 것이요, 하나는 식초로 변하는 것이다. 앞의 것은 죽음을 부르고, 뒤의 것은 건강의 길잡이가 된다. 그래서 좋은 발효를 통해 올바로 숙성된 것은 값이 비싼 것이다. 음식도 술도 사람도 그렇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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