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때는 길었지만 돌아보니 짧은 시간을 보냈다



"한낮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나를 안고 작은 도시에 내리더니 기차역 맞은편에 있는 식당에서 국수를 시켰다. 
내 몫으로는 고기 고명이 있는 국수를, 당신 몫으로는 고명 없는 소면을 시켰다. 
양이 너무 많아서 내가 다 먹지 못하자 아버지가 남은 것을 먹었다. 
그런 다음 아버지는 나를 앉혀놓은 채 혼자서 거리로 나가 고아원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다."
위화 <제 7일> 중에서



‘허삼관 매혈기’로 전 세계 독서가들을 매료시킨 중국의 작가 위화((余華)의 또 다른 소설 ‘제7일’은 죽은 자의 이승과 저승 경계에서의 7일간의 여행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이승에서 만난 인연들을 추억하는 주인공 양페이의 인생극장이 다채로운 빛깔로 펼쳐지죠. ‘허삼관 매혈기’를 시작으로 ‘형제’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눈물, 콧물에 더해 짠 내 가득한 처연한 인생살이와 인물 묘사가 이러한 전작들의 참맛이었습니다. 파란만장한 중국의 현대사 안에서 걸쭉한 입담으로 풀어 놓은 ‘웃기지만 슬픈’ 이야기가 위화 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제7일’은 담백한 문체로 독자들의 가슴 한구석을 알싸하게 만드는 이야기꾼 위화의 재간이 한껏 펼쳐집니다.

사랑하는 여인 리칭과의 짧은 만남도 아련했지만 양페이와 아버지 사이 부자간의 정은 가을 낙엽만큼 말라버린 많은 독자들의 잊혀 진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기차 철로에서 갓난아기 양페이를 주워 아무런 조건 없이 기르기 시작한 양아버지는 25살이 되자 소설 속 표현대로 ‘심리적이든 생리적이든’ 여자가 필요해 결혼을 앞두고 양아들을 고아원에 두기로 마음 먹습니다. 헤어지기 전 부자가 마주앉아 식당에서 국수를 시켜 먹고 이별을 하지만 양아버지는 다음날 아들을 찾으러 갑니다.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듯 길게 느껴지던 지난 시간을 반추하면 한순간도 반짝이지 않는 순간이 없더라는 깨달음을, 위화는 순간이 모여 이루어내는 삶 자체의 아름다움을 극진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스위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전시회 초입에 새겨진 ‘삶은 현기증이 일 정도로 빨리 지나가 버렸고 최후가 다가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구절이 기자의 발길을 붙든 이유도 같은 지점이겠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의 마지막 뒤안길, 우리는 누구와 함께 먹은 국수 한 그릇을 기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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