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도매인제 도입 논란 재점화

서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 내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하는 것과 관련한 논란이 국정감사에까지 번졌다. 9월 10일 농림축산식품부 국정감사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은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 박현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사장에게 시장도매인제 관련 질문을 쏟아냈다. 여야 간 시장도매인제에 대한 입장이 달랐다.

 

시장도매인제 도입 놓고 여야 온도차

시장도매인제 도입 논란을 놓고 여야 의원들의 입장에서 은근한 온도차가 드러났다. 여당 의원들은 간접적인 도입반대 근거를 옹호했고 야당 의원들은 “‘이해당사자 간 합의’를 승인조건으로 걸고 방치하고 있다“며 농식품부를 비판했다.

특히 최규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농식품부가 승인조건을 이해당사자 간 합의로 설정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이해관계한 첨예한 사람들 간 합의가 가능한가”라며 “합의를 유도하는 취지는 좋지만 협의라는 단어를 써야 현실성이 있지 않느냐”고 압박했다. 농식품부의 방관자적 태도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

같은 당 황주홍 의원 역시 박현출 사장에게 시장도매인제 도입 필요성에 대한 질의를 진행한 후 “농식품부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혼란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든다”고 질타했다. 김승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더 직접적으로 농식품부를 비판했다. 그는 “농업인의 수취가격 대비 유통비용이 경매제는 15.8%이고 시장도매인제는 공영도매시장 법정 수수료인 7%인데 왜 도입하지 않느냐”며 이동필 장관을 다그쳤다.

하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은 상당히 다른 태도를 취해 대비됐다. 우선 이인제 의원은 “서울시공사가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추진하는 데 분쟁이 심한 것으로 안다”며 “농식품부가 갖고 있는 승인권을 행사함에 있어 서울시공사가 도입을 강행하는 이유, 기존 경매제가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 여부, 시장도매인제의 부작용 등을 잘 검토하라”고 당부했다.

윤명희 새누리당 의원 역시 “농업인 5만여 명의 시장도매인제 도입 반대 서명이 농식품부에 전달된 것은 가락시장의 가격이 전국 농산물 가격의 척도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며 “박현출 사장은 서울 강서농수산물도매시장의 장점을 잘 계승해 이를 농업인들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박 사장은 “가락시장에는 지금 당장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할 공간이 없고 3~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 기간 동안 농업인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적극적으로 찾겠다”고 답했다.

 

장사꾼은 못 믿나? 신뢰문제 꾸준히 제기

가락시장의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반대하는 쪽의 가장 큰 근거는 시장도매인에 대한 신뢰 문제, 즉 “장사꾼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출하자에게 판매가격을 속이는, 일명 ‘칼질’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과 출하주가 종속되면서 발생하는 힘의 균형 문제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은 사실 답이 없다. 정산회사 설립, 실시간 유통 물량 공개 등 다양한 안전장치가 마련됐다고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를 피할 편법이 생기지 않는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농업계 관계자는 “시장 내에서야 큰 규모를 자랑하겠지만 산업계 전체적으로 보면 영세한 규모인 시장도매인들이 시스템을 구축해 회계처리를 정확히 한다는 데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칼질 방지책으로 전자세금계산서 발행 의무화로 가격을 속이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세무 실무자의 말은 다르다. 한 기업 세무 관리 부서 직원의 말에 따르면 전자세금계산서를 발행할 때도 필요적 기재사항 중 하나인 공급가액과 부가가치세만 명기하면 된다. 세부항목을 전부 표기할 법적 강제성은 없는 것이다.

출하선택권이 확대되느냐의 문제는 거래과정의 투명성 확보와 직결되는데 출하주와 시장도매인 사이의 다양한 거래행태를 실질적으로 규제할 제도적 장치 마련은 어려워 보인다. 물론 출하주들의 성장으로 이제는 소비지의 상인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박 사장은 “최근 산지에서는 조직화가 상당히 이뤄져 생산자 단체의 힘이 강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누구의 힘이 더 강한지를 가늠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시장도매인의 실력에 대한 문제제기도 꾸준하다. 자체적인 가격 형성을 하지 못하고 경락가격을 참고한다는 것이다. 시장도매인은 규모가 큰 상인들인데 이들이 좋은 품위의 농산물을 확보하고 낮은 품위의 농산물로 형성된 경락가를 참고해 단가를 책정하면 농가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비슷한 구도로 지난해 산지유통센터를 중심으로 대형유통업체와 직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소문이 돌았던 해프닝도 일어난 바 있다.

위의 농업계 관계자는 “서울 강서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도 시장도매인이 당일 또는 전일의 경락가격을 기준으로 얼마간을 더해 가격을 책정하는 일이 없지 않다”고 전한다.

반면 신동섭 한국시장도매인연합회 사무총장은 “시장도매인들은 출하주들과 장기간의 거래관계를 갖고 장사하고 있다”며 “법적으로도 수탁거부가 금지돼 있고 거래관계 유지를 위해 품질이 심각하게 훼손된 농산물을 손해를 감수하고 떠안는 사례도 있다”고 항변했다.

 

가락시장 가격은 여전히 대한민국 표준?

시장도매인제 도입으로 인한 가장 큰 실질적 부작용이 경매제도의 존립 기반 약화다. 경매제도의 존재 이유인 가격발견 기능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거래물량이 줄어들게 되면 ‘대한민국 표준’으로 통하는 가락시장 경락가격의 공신력 훼손은 일정부분 불가피해 보인다.

가락시장 내에서 경매 거래물량이 줄어들면 어떤 형태로든 경락가격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반대하는 측은 이 영향의 방향성을 하방으로 전제해 왔다. 규모가 큰 중도매인들이 시장도매인으로 빠지게 되면 시세를 주도해 줄 경매참가자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 사장이 한 농민단체 주최의 조찬모임에서 “시장도매인제 도입으로 인해 경락가격이 하방으로만 움직인다는 근거가 없다”는 반론을 제기해 눈길을 끌엇다. 서울시공사가 5개 상장예외품목의 1995년 1월~2015년 5월의 월별 가격과 물량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경락가격과 비상장 거래 가격은 같은 방향성을 보이며 비상장 거래 물량 증가와 경락가격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다.

경매 물량 감소로 인한 경락가의 위상 하락이 문제지만 이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방향이다.

물론 한 소비지유통업체 벤더사 부사장인 전직 농산MD는 “가락시장 경락가격은 여전히 대한민국 표준”이라며 “국내 어느 한 장소에서 농산물을 유통하는 규모가 가락시장이 가장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량이 가장 크기 때문에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지만 시장도매인제 도입과는 별개로 그 위상이 이미 허물어지고 있는 듯 보인다.

우선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가·수의매매 거래 확대도 결국 경매물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 출하주와 유통인이 필요에 의해서 옮겨가든, 왼쪽 주머니에서 오른쪽 주머니로 옮기는 식으로 정부의 드라이브와 함께 의도적 증가를 하든 경매물량은 감소한다.

이미 소비지 유통업체들의 가락시장 경락가격 의존 정도는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한 대형마트의 과일MD가 “가락시장 경락가격은 이제 대한민국 표준이 아니다”고 말할 정도다. 9년차의 경력을 가진 그는 “처음 MD생활을 시작할 때 가락시장 경락가격을 참고하던 정도가 90이라면 현재는 30~40 수준까지 하락했다”고 말했다.

 

기자의 시각> 혁신이냐, 보완이냐

 

농산물 가격 발견을 계속 경매제도에만 의존하면 ‘농가소득 증대’는 요원해 보인다. 경매제도가 농산물 가격발견을 주도하는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농산물의 단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하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는 공급 증가다. ‘기술 진보’ 때문이다. 기후에 따른 변동요인은 있지만 영농 기술, 수확 후 관리 기술 등의 발달은 시장에 공급되는 농산물의 양을 장기적으로 늘릴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역시 수요 감소다. 한 도매법인 임원조차 “농산물 가격이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집에서 찌개를 끓여 먹는 수요가 늘어야 한다”고 토로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소비 트렌드나 라이프 스타일을 보면 집에서 저녁을 해먹는 소비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세 번째는 밀려드는 수입산들의 공격이 만만치 않은 점이다. 대형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외국산 이색 신선식품의 소싱도 크게 늘고 있다. 한 대형마트의 신선식품 부문장은 “이제는 글로벌 소싱이 주력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시장에만 맡겨두면 농가소득이 늘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정황이 드러난다. 최소한 원물의 생산-판매에서는 그렇다. 시장에서는 답이 없기 때문에 정부의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의 제도를 보완해가며 베이비 스텝을 밟을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해 혁신을 찾을지, 기로에 서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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