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는 문화다”

 

“술은 술일뿐이지요. 그러나 전통주는 술로 끝나지 않습니다. 세월을 따라 흘러온 소통의 매개체이자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희끗한 박재서 명인(명인 안동소주 대표)을 아직도 20대 청년으로 돌아오게 하는 술 그리고 전통주. 여든이 가깝도록 풀지 못한 숙제가 많아 쉽게 나이들 수 없다는 장인의 뼈 있는 소망.
 

전통+기술=맛, 3단 사입방식의 탄생

‘명인 안동소주’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가양주에 뿌리가 있다. 반남 박씨 10대 손인 은곡 박진(1477~1566) 유학자가 안동에 정착한 뒤 정부인 안동 권씨가 가양주로 빚은 것이 유래다. 반남 박씨 25대 손인 박 명인은 가양주의 전통을 바탕으로 안동소주를 만들었다. 문중의 가양주 수준에서 한 단계 진보한 맛을 탄생시켰다.

“고등학교 때 어깨 넘어 어머니가 술을 빚는 걸 보고, 배웠어요. 그러다 1988년 제비원안동소주에서 일하던 제조 명장을 만나 기술을 전수 받았죠. 이후 가문의 전통 제조비법과 신기술을 결합해 명인 안동소주가 탄생했습니다. 본격적으로 3단 사입방식이라는 고유의 기술로 술을 빚기 시작한 거예요.”

박 명인은 쌀과 누룩, 물을 3단계를 거쳐 증류해 소주를 빚는다. 보통 술을 빚는 방식이 2단계인 데 비해 한 단계를 더 거친다. 1∼2단계가 10일, 2∼3단계가 15~20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증류를 하려면 한 달가량 필요하다. 물은 안동시 와룡면 고지대의 지하 270m에서 끌어올린 암반수를 쓰고 있다.

숙성은 옹기에 넣어 기본 100일을 보관한다. 부드러운 맛을 끌어올리기 위해 2년까지 저장한 뒤 출고하고 있다. 박 명인은 이런 제조비법을 인정받아 1995년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 제6호로 지정됐다.



세 번 빚은 술… ‘술(酒)’이 아닌 ‘진한술(酎)’

3단 사입방식의 강점은 잡냄새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 증류식 소주는 대부분 누룩을 기반으로 술을 빚기 때문에 특유의 냄새가 남을 수 있다. 명인 안동소주는 막걸리가 아닌 청주로 증류하고, 술을 중탕으로 증류하는 방식으로 맛과 향을 깊게 했다.

첨가물도 없다. 국산쌀을 사용한 고두밥과 누룩이 전부. 이렇게 만든 술은 45도라는 높은 알코올 도수를 자랑한다.

최근 저도주가 인기를 끌면서 전통주의 대중화를 위해 45도를 비롯해 35도, 22도의 술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박 명인은 45도의 제품에 엄지를 치켜세운다.

“술을 다 빚고 났을 때 위로 뜬 독한 부분과 가라앉은 부분을 처리하고 뽑는 가장 순수한 알코올 도수가 45도에요. 그 어떤 것도 첨가하지 않고, 희석하지 않은 순도 100%의 맛이죠. 높은 숫자에 겁을 먹을 수 있지만 생각만큼 독하지 않아요. 조금씩 입에 물고 향을 음미한 다음, 천천히 넘깁니다. 처음 입안에 들어와 머물 때의 곡향과 넘긴 후에 남는 달콤한 잔향까지 스펙트럼이 넓어요. 목넘김이 좋아 충분히 부드럽게 마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유통… 활로 모색 시급

박 명인은 “제도도 중요하지만 유통이 간절하다”고 강조한다. 정부에서 전통주 산업을 장려코자 여러 각도에서 지원 사업을 시행하고는 있지만 하루에도 문을 닫는 업체가 몇 개씩 나오고 있다. 게다가 여름은 비수기로 사정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브랜드를 달고 있는 전통주들은 버틸 여력이 있지만 업계가 전반적으로 빠르게 가라앉는 데는 속수무책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전통주 시장이 너무 정체돼있습니다. 국내유통은 꽉 막혀있는 상황이고요. 해외시장을 주력해야 하지만 작은 업체들이 할 수 있는 방법도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요. 무작정 해외 박람회에 참여도 해봤지만 만나는 바이어 10명 중 5명은 주류수출면허가 없거나 의무상 상담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술의 품질은 자신 있다. 세계의 어떤 명주와의 대결도 두렵지 않다. 그러나 알아보는 이 없다는 생각에는 기운이 빠진다.

“술은 국가의 이미지이자 문화입니다. 각 나라마다 대표하는 술이 있고, 술을 통해 많은 것을 상상하게 되고, 또 맛을 통해 그 나라를 이해하게 되지요.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는 술이 있습니다. 전통주는 술이 아니라 문화임을, 그렇게 알아갈 때 변화는 시작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 3단사입은
백미 5kg과 누룩 1kg에 물 7.5ℓ로 주모를 잡아 20~25°C로 4~5일간 뒀다가 백미 30kg과 누룩 6kg에 물 45ℓ를 섞어 2단 사입한 후 4일 뒤 다시 백미 65kg과 누룩 13kg에 물 90L를 섞어 3단 사입한 후 15~20일간 신선한 곳에서 26°C정도 온도가 유지되도록 발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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