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칼럼

밥을 먹으면서 K가 말했다. “올해의 10대 뉴스는 빨리 고를 수 있겠다.”

H가 물었다. “무슨 10대 뉴스요?”

K의 답. “내 삶의, 올해에 일어난 내 10대 뉴스.”

H의 질문. “매년 그걸 정리해요?”

K의 답. “어, 대학시절부터 계속 해왔는데…”

둘러앉은 여러 명. “오오오. 어떻게 하면 그런 피를 가질 수 있을까?”

세상엔 저마다 희귀한 기적을 만드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내 인생의 사건들, 사람들, 장소들, 사연들…

10대 때 어느 절에서 만난 스님이 말했다.

“숨이 기적이야. 아무 생각 없이 쉬는 숨과 의식하며 쉬는 숨, 엄청나게 다른 거야.”

20대 어느 새벽, 산책길에 만난 노인이 말했다.

“그냥 걷지 말고 새벽 풀잎에 맺힌 이슬 냄새를 맡아 봐. 인삼 녹용보다 더 귀한 보약이야.”

30대 때 노변 구두 수선집 할아버지가 꾸짖었다.

“이 구두가 촌스럽다고? 그게 얼마나 좋아. 촌스러운 게 좋은 거야.”

30대 중반, 직업병과 사회적 명분 사이 갈등할 때 어느 선배가 말했다.

“남 걱정 그만하고, 너나 잘하세요.”

40대, 어느 후배가 말했다.

“우리가 원래 유랑자의 후예예요. 유목, 유랑, 집시… 이런 부류는 원래 개방적이고 자유로워야 오래 살아요. 가진 것이 없다고 자책하지 마세요.”

이제 와 생각하니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명희, 명애, 영은이, 순희, 남순이, 영숙이, 경희, 경자, 정민이, 선희, 진이, 윤희, 윤경이, 하늘이… 돌아보니 내 인생에 여자들도 뜻밖에 많았다. 이름들, 참 촌스럽다. 촌스러운 게 아름다운 거라는 구둣집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춘천, 강릉, 속초, 평창, 화천, 철원, 의정부, 연천, 포천, 수원, 수유리, 여의도, 합정동, 청담동, 광화문, 서대문, 충무로, 세검정, 용산, 신사동, 사당동, 서귀포, 만리포, 안면도, 공주, 전주, 정읍, 채석강, 땅끝마을, 해남, 고흥, 여자만, 해인사, 통도사, 월정사, 쌍계사, 지리산, 오대산, 북한산, 청계산, 동강, 한강, 한탄강, 섬진강, 낙동강, 섬강, 남대천… 돌아보니 내 인생의 주요장소들도 많았다. 유랑자의 후예를 자처하며 가진 것 없이 사는 후배에게 감사한다.

 

기적적 사건들도 많았다. 그 많은 시험들을 어떻게 다 치렀는지, 결혼은 어떻게 했고, 애들은 어떻게 키웠고, 그 많은 회사들과 동료들을 거치는 동안 얼마나 많이 잊고 해후하고, 싸우고 사랑하며 지겨웠는지… 참말 기적의 연속이다.

그리고 오늘, 마감 점심을 먹으며 훑어보니 이들도 기적적 인간들이다. 이들과 터키 일대를 훑고 다니며 문득 떠오른 단어가 “도둑들”이다. 하찮은 물건이 아니라 인생을 송두리째 훔칠 줄 아는 도둑들로 이들이 진화하리라 감히 예견한다. 아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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