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주도의 신품종 R&D사업이 생산성 중심에서 품질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무조건 많이 수확하는 ‘다수성’이 제1순위였다면, 이제는 맛과 저장성, 유통 편의성이 먼저다. 특히 종자 수출에 무게중심을 둔 농림축산식품부의 ‘골든시드프로젝트’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농촌진흥청과 각 지역 농업기술원도 신품종 개발 단계에서 유통업계와 소비시장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원 종자 주권 수호를 위해 신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원 종자 주권 수호를 위해 신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1970년대 한국 식량산업에 일어난 ‘녹색혁명’ 의 중심에는 ‘통일벼’가 있었다. 고 허문회 박사(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교수)가 개발한 이 품종의 특장점은 다수성이다. 
 
통일벼는 동남아시아 열대 기후에서 재배하는 쌀인 ‘인디카’ 품 종과 온대형 ‘자포니카’ 품종을 교잡한 품종으로, 당시 우리나라 쌀 재배면적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자포니카 품종보다 생산성이 30% 더 높았다. 
 
그 결과 통일벼가 보급된 지 5년 만에 우리나라의 쌀 자급률은 113%를 돌파했고, 해마다 반복됐던 보릿고개도 사라졌다.
 
 
중앙아시아 진출한 국산 ‘탐나’ 감자
 
이렇듯 우수한 신품종의 개발은 한 국가의 농 산업 틀까지 바꾼다. 정부가 농산물 신품종 개발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특히 2012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가 시행하고 있는 ‘골든 시드프로젝트(Golden Seed Project)’는 국가 주도 신 품종 R&D 사업 중 가장 규모있는 사업이다. 
 
2021년까지 총 10개년의 계획으로 시행 중인 이 사업의 목표는, 경쟁력 있는 신품종을 개 발해 종자 주권을 수호하고, 나아가 전세계에 우수한 한국 종자를 수출하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GSP를 통해 개발한 우수 국산 품종을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정 부 예산과 민간 투자비를 합쳐 총 4911억원이 투입됐다. 투입된 정부 예산은 약 4000억원이고, 나머지 자금은 민간 종묘업체들이 댔다. GSP는 분야별로 총 5개 사업단이 구성돼 운영 중이다. 사업단이 맡은 분야는 각각 채소종자, 원예 종자, 수산종자, 식량종자, 가축 품종이다. 
 
채소종자사업단(고추, 배추, 무, 수박, 파프리카)과 원예종자사업단(양배추, 양파, 토마토, 버섯, 백합, 감귤)이 총 11개 품목의 품종 개발을 맡고 있으며, 5개 사업단이 통틀어 20개 품목을 연구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2021년까지 GSP 개발종자 수출 액을 총 2억달러까지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주력 수출 분야는 채소, 화훼다. 
 
통상 3년이 지나야 수확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과수보다는, 수개월 내에 파종부터 수확까지 완료되는 채소 류가 다수다. 채소, 화훼류는 수입 종자 의존 률이 높은 것도 이유다. 특히 백합 등 구근식물 과 파프리카는 해외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수입 품종의 재배율이 높은 편이다. 이러한 품 목에 대해 국산 품종을 개발해 종자 주권을 수호하는 것이 정부 목표다. 농식품부는 프로젝트 종료 시점까지 2년을 앞둔 2019년 9월 ‘GSP 성과발표회’를 개최해 연구 성과를 중간 점검했다. 
 
특히 ‘탐나’ 감자는 제주도 시험재배를 거쳐 중앙아시아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홍익바이오는 감자 주산지인 카자흐스탄 의 한 민간업체와 합작법인 ‘SK Seed’를 설립하고 신품종 통상실시권을 체결했다. 홍익바이오가 2019년까지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의 종자업체에 수출한 종자는 총 11만달러 상당이다. 
 
 
딸기·버섯, 국산 품종 점유율 높아 
 
GSP와 별개로 신품종 R&D 업무를 상시 수행하는 농촌진흥청과 지 역 농업기술원도 최근 좋은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 결과, 수입 품 종이 우세하던 과채류 재배 현장에서 국산 품종이 점유율을 높이기 시작했다. 가장 괄목할 만한 변화를 보인 품목은 딸기다. 
 
충청남도농업기술원 논산연구소(구 논산딸기시험장)이 2005년 ‘설향’ 품종을 개발하면서 국산 딸기 산업에는 큰 변화가 일었다. 일본 품종 ‘장희’와 ‘레드펄’을 교배한 ‘설향’은 딸기 특유의 향과 맛을 잘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농가들 사이에 급속히 보급됐다. ‘설향’의 등장으로, 국산 딸기 품종 보급률은 2001년 기준 1.4%에서 2019년 기준 96%로 폭등했다.
 
‘설향’의 성공에 힘입어 농촌진흥청 산하의 국립원예특작과학원과 딸기 주산지 소재 농업기 술원은 후속 신품종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설향’ 이후 개발된 품종으로는 ‘죽향’, ‘매향’, ‘아리향’ 등이 있다. 최근에는 특용작물 분야에서 도 이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양송이 버섯의 경우 국산 품종 보급률이 2010년 기준 4%에 서 2019년 기준 65%까지 증가했다. 
 
농촌진흥청이 2010년부터 버섯 신품종 개발에 공들이 면서부터다. 그동안 버섯 농가들은 미국에서 유래한 ‘A15’ 품종을 많이 재배했으나, 우수한 국산 품종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특히 인기있는 국산 품종은 ‘새도’, 새한’, ‘도담’ 등 8품 종이다. 농진청은 이런 추세라면 국산 보급률이 2020년 70%를 돌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동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버섯과장은 “농가의 초기 보급률도 중요하지만, 재구매율도 중요하기에 소비 트렌드를 반영해 우수한 신품종을 계속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Info

이마트에서 판매 중인 국내 육성 품종 '킹스베리' 딸기.
이마트에서 판매 중인 국내 육성 품종 '킹스베리' 딸기.

 

“당도, 향, 저장성 ‘3박자’ 갖춘 딸기 신품종 개발이 목표” 

 

김대영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채소과 연구관 

“딸기의 국산 품종 보급률은 현재 95.5%에 달한다. 그중에서 ‘설향’의 비중이 88%다. ‘설향’은 워낙 맛과 향, 당산비(당도 와 산도의 비율)가 우수한 품종이다. 다만, 과육이 다소 무른 편이어서, ‘설향’보다 좀더 단단하고 기왕이면 당도도 더 높 은 품종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요즘 소비자들이 제일 선호하는 건 단맛이다. 일단은 고당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 다음에 딸기 고유의 향을 보강하고, 좀 더 추가하자면 유통의 용이성과 저장성이 필요하다. ‘설향’의 당도는 겨울철 비닐하우스 재배 기준으로 평균 12브릭스다.

‘설향’의 인기가 워낙 압도적이지만, 최근 개발된 품종 중에서도 우수한 품종이 많다. 충청남도농업기술원이 개발한 ‘비타베리’가 그 예다. ‘비타베리’는 정말 맛잇다. 향도 아주 독특하고 당도도 높다. 담양군농업기술센터가 개발한 ‘메 리퀸’ 품종도 맛있다. 다만 이 두 품종의 재배 안정성은 ‘설향’보다는 낮은 편이다. 탄저병, 흰가루병에 대한 저항성이 약해서 재배시 세심한 방제가 필요하다.

생산성 또한 아직은 ‘설향’이 가장 우수한 편이다. ‘설향’은 다수성이다. 수확량이 많은 품종이다. 그 이후에 개발된 품종들은 ‘설향’의 수확량을 못 따라간다. ‘설향’ 이후 국내에서 40개 품종이 나왔는데, 이런 여러 가지 면들을 고려 하면 아직도 ‘설향’이 재배 측면에선 가장 용이한 편이다.

딸기의 국내 품종 보급률이 거의 100%에 달했는데도 계속 신품종을 육종하는 이유는, 종자 주권 수호를 위해서다. 일본 품종이 언제라도 들어올 수 있어서, 거기에 대비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최근 과육이 크거나 하얀 프리미엄 딸 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민간업체들이 로열티를 지불하고 이런 품종을 들여올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해 경쟁력 있는 국내 품종들을 계속 개발해야 한다.

‘설향’으로 딸기 산업이 제1의 도약을 이뤘다면, 앞으로는 품종의 고품질화, 다양 화를 추구하는 것이 목표다.”있는 국내 품종들을 계속 개발해야 한다. ‘설향’으로 딸기 산업이 제1의 도약을 이뤘다면, 앞으로는 품종의 고품질화, 다양화를 추구하 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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