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처가를 찾았습니다. 평생 손에서 일을 놓아본 적이 없는 장인은 그날도 과수원에 계셨습니다. 늦은 오후 과수원에서 돌아온 장인이 톱날을 다듬습니다. 이튿날 가지치기를 위한 준비인 셈입니다. 다음날, 해가 뜨기도 전에 일하시는 분들이 오셨습니다. 아침을 먹고 잠깐 쉬는 사이, 장모께서 새참 내 가라고 부릅니다. 10시도 안돼, 새참을 들고 과수원으로 향했습니다. 장인과 일하시는 분들은 이미 가지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새참을 먹으며 장인은 40여년 체득한 가지치기 기술을 들려줍니다. 해마다 들려주는 이야기지만, 들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장인에게 배운, 가지치기 기술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가지치기를 겨울에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잎이 무성하고 잔가지가 많을 때는 나무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잎을 모두 떨군 후에라야 나무의 본 모습을 볼 수 있고, 어떻게 키울 지 나무의 미래 모습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남길 줄기와 자를 줄기를 선택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둘째, 가지치기는 지나쳐서도 부족해서도 안됩니다. 가지치기 경험이 부족한 초보들에게 전지가위를 맡 기면, 나뭇가지만 쳐다보다 하루를 다 보냅니다. 어떤 가지를 자를지 망설이기 때문입니다. 망설임 탓에 가지치기를 할 때도 소극적입니다. 남기는 가지가 많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고민 끝 에 남긴 가지가 결국은 정리해야 했던 가지일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지나쳐서도 안됩니다. 초보를 벗어나 가지치기에 자신이 붙으면 과감해집니다. 자신감이 생기 면 두 번, 세 번 가지치기를 반복해야 할 일은 줄어듭니다. 그런데 자신감이 지나쳐 너무 많은 가지를 자 르면 나무 전체가 상하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나무가 죽기도 합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인 거죠. 
 
셋째, 웃자란 도장지는 과감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웃자람가지인 도장지는 질소질 비료의 과다 등으로 지나치게 자란 가지입니다. 중요한 점은 도장지에는 꽃눈이 거의 붙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열매도 맺 지 못하는 도장지에 영양분을 뺏길 이유는 없습니다. 때문에 도장지만 잘 정리해도 가지치기의 시작은 한 셈입니다.     
 
어떤 면에서 가지치기는 나무에게 ‘기본으로 돌아가는’ 연례행사인지도 모릅니다. 나무가 가지치기를 하 듯, 겨울은 우리에게도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허덕이며 출근해서 내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가,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반복적인 일상.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돌아보면 이룬 게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면, 지금이라도 인생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습 니다. 그리고 가지치기하듯 삶을 간단명료하게 만들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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