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일본인에 대한 비교 중 ‘일과 돈’에 관한 썰이 있다. 우선, 돈에 대한 비교부터 보자. ‘한국인들은 쓰기 위해 돈을 벌고, 일본인들은 모으기 위해 돈을 번다.’ 음, 다소 극단적이지만 일면 타당한 측면이 있다. (여러분도 판단 해 보시길). 


다음, 일에 대한 비교.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변명을 대하는 양 국인의 태도다. “아이가 아파서 급히 병원을 다녀오느라 늦었습니다.” 주로 한국인들이 보이는 변명이다. 아이나 부모 등 가족 때문에 늦었다고 했을 때, 한국인들은 대부분 이해해 준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대부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사회적 약속에 왜 가족을 꺼내느냐는 의문이다. “일을 마쳐야 하는 게 있어서 마무리하느라 늦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주로 하는 변명인데, 그들은 일 때문에 늦은 것은 충분히 이해해 주는 문화 다. 한국인들 대부분 의아해 하고, 더러는 불쾌해하기도 한다. 우리 약속보다 ‘너의 일이 더 중요하냐’는 불만이다. 10여 년 전, 이 비교를 들었을 때는 ‘역시 일본은 선진국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공과 사를 마구 뒤섞어 살아가는 우리 문화가 답답하다고 여겼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고 있다.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것 아닌 가. 또는 나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 아닌가. 프로페셔널한 일처리, 장인 정신과 몰입 정 신, 다 좋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올인하며 일해야 한다면, 왠지 무섭지 않은가.


2년 전, 뉴질랜드 정부에서 ‘강에게 인격을 부여한 법’을 통과시켰다는 뉴스가 있었다. 세 계 최초로 인격을 가진 강이 탄생한 것이다. 강에게도 인격이 있다니, 그래서 강도 인간 처럼 법적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니… 도대체 그런 발상을 누가 했으며 국가는 어떻게 그 것을 받아들였으며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 강의 인격화를 정착시켰을까. 파고들자면 한 이 없지만 배경을 축약하면 이렇다. 뉴질랜드 원주민 부족인 마오리족이 100년 넘게 싸워(정부에게 지속적으로 요청했다는 의미) 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터전인 황가누이 강을 ‘코 아우 테 아와, 코 테 아와 코 아우(Kō au te Āwa, kō te Āwa kō au)’라 부른단다. ‘내가 강이고, 강이 나’ 라는 뜻이다. 이건 뭔가. 우리가 대대로 배우고 익혀 온 ‘물아일체(物我一体)’ 사상이요,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하이쿠(俳句; 일본 고유의 짧은 시, ‘우주=자연=나’를 함축한 시가 많다)’의 토대 아닌가.

 

독일에 사는 친구가 시장을 갈 때마다 불편해 하던 일을 들었다. 신속 정확한 한국 마트 와 다른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점원이 소비자보다 더 대우를 받는 문화에 한동안 적응 을 못하다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는 얘기. 노동자, 장애인, 노약자, 동식물… 이들을 특 별히 중시하고 대우하는 것이 일상화된 나라에 살면서, 자신도 변화하게 된 배경을 쉽고 단순하게 알려 줬다. “지름길이 제일 빠른 길일 수는 있지만 제일 좋은 길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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