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명퇴 1번으로 신청했습니다.” 

오랜만에 전한 안부에 A형이 보내온 답입니다. 출입처에서 만난 A형은 유달리 마음이 가는 분입니다. 함께 산지를 찾고, 지방 유통센터를 돌며 그는 농산물 유통에 대한 많은 지혜를 나누어주었습니다. 가끔 술잔을 기울일 때면 치열했던 젊은 날과 거기서 얻은 삶의 지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속에는 명퇴 이후 계획도 끼어 있곤 했습니다.

때문에 명예퇴직이 새삼스러울 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눈앞에 ‘명퇴’라는 단어를 보자 마음이 아연했습니다. 한동안 ‘명퇴’라는 말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고,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바로 답을 보냈습니다. 전화드리겠다고, 소주 한잔 하자고. 

A형과 이별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농협을 출입하며 해마다 겪는 일입니다. 농협과 인연을 맺은 첫해에는 B상무가 있었습니다. 산지유통, 특히 조합공동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협동조합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농협을 나와 식품기업 사외이사와 연구소 자문위원을 역임했던 그는 몇 해 전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던 9월, 나누었던 통화가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때도 그는 여전히 담백한 목소리로 “여기는 언제 올 거야?”하며 반갑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술을 좋아하던 C형도 그립습니다. “마트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놈이 농산물 유통 총괄하고 있다”고 너털웃음을 짓던 그였습니다. 명퇴 후에도 그는 조공법인 대표로 여전히 산지와 유통을 오가며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여기 올 땐 휴가 내고 1박할 작정하고 내려와!”라던 그를 아직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명퇴를 하고 자회사 임원으로 간 D형도 있습니다. 솔직하고 품이 넓었던 그는 선후배들 사이에 특히 신망이 두터웠습니다. 그 덕에 많은 분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달 전 점심을 먹으며, “올해가 가기 전에 소주 한잔 하자”고 한 약속을 지킬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언급한 분들 외에도 농협에 출입하며 많은 분들을 만났고, 또 떠나보냈습니다. 허튼짓은 절대 못할 것 같은 E형, 근면·성실의 대표주자였던 F상무, 술자리에서도 바른 소리 잘 하던 G부장….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제대로 못 드렸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 지면으로나마 안부인사를 전합니다. 

Si vales bene est, ego valeo.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 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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