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말한다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달이 지면 해가 뜬다. 잘은 몰라도 수억만 년 동안 변하지 않은 사실이요, 진실이다. 그러고 보니 나무와 꽃, 물과 바다, 흙과 하늘도 천 년 전이나 만 년 전이나 오늘의 그것과 똑같았을 것이다. 새와 뱀, 물고기와 바퀴벌레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희한하게도 인간만 뭔가 바뀌었다. 천 년 전, 만 년 전과 비교해서 바뀐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요즘은 백 년 전과도 다르고, 십 년 전과도 다르다. 곰곰 생각해 본다. 모든 자연과 우주 삼라만상이 변화 없이 돌고 도는데, 사람만 끊임없이 바뀌는 이유는 뭘까? 아인슈타인도 몰랐던 그 이유를 나라고 알 턱이 없다.


추석이다. 서양에서는 추수감사절, Thanks giving day라고 한다. 한 해 동안 무엇인가를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함께 즐긴다는, 의미가 명쾌한 서양과 비교해 추석이란 말은 왠지 모르게 모호하다. 秋夕, 가을 저녁이라니. 가을 저녁이라서 뭐가 어쨌다는 거지? 추수감사절의 마음이 추석에 담겨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고마운 가을, 가을의 중심(仲秋節), 수확 후 축제… 많고 많은 이름 중에 하필 추석이라는, 가을 저녁이라 명명한 조상들의 뜻을 (정약용도 아닌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추석을 앞두고 잠시 독일에 다녀왔다. 해마다는 아니지만, 서구라 일컬어지는 나라들을 간혹 다니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Japanese? Chinese? 하고 묻는 그들에게 “Korean”이라고 답할 때, 그들에게 나타나는 표정이 10년에 한 번씩은(어쩌면 5년? 3년? 매년일지도 모른다) 바뀌어 있다는 느낌이다. 점점 더 밝아지고, 점점 더 친숙한 느낌을 전해오고, 때로는 구체적으로 “한국이 참 좋다”는 말까지 건네는 서구인들이 늘고 있다.

왜 그럴까? 경제적으로 선진국 행세깨나 하게 됐고, K-pop이나 드라마로 나름 문화적 위세도 떨치고 있고, 잘났는데 겸손미를 보이는 스포츠 선수들도 더러 배출했고… 갖가지 추정을 하면서도 왜냐고 물어봤다.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독일인이 아주 길게 답을 했는데, 이해하기가 영 힘들었다. 옆의 통역자도 마찬가지였던 듯, 이렇게 답을 정리해 줬다. 

“굳이 해석하자면 운치가 있다는 얘기 같아요. 단순히 음악적 리듬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네요.”

어머나, 놀라워라. 그러고 보니 그렇다. 곧 추석인데, 추석이란 명절 이름도 그렇지 않은가.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운치 가득한 이름이다. 1년 중 가장 달이 크고 밝다는 추석, 가을밤의 최고봉, 달달 보름달… 저 달이 날마다 말하는 것이다. 뜨면 지고, 지면 뜨고, 차면 기울고, 기울면 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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