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에 맥주나 한잔하자며 아내와 찾은 식당에서 벌어진 일이다. 갑자기 옆자리에서 소란이 일더니 언쟁이 붙었습니다. 급기야 한 중년 남성이 벌떡 일어서더니 “생각이 다른 사람하고 더는 같이 있을 수 없어. 나는 가!”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더군요.  

언쟁은 일행 중 한 명이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가게 운영이 어렵다고 토로한 데서 출발한 듯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던 중 일행 중 한명이 “그럼 일본한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말이야?”라고 어깃장을 놓으면서 언쟁에 불이 붙었습니다. 

대부분의 싸움은 비약에 비약이 더해지면서 커집니다. 그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몇 마디 말이 더 오간 후, 언쟁은 더 이상 해답을 찾지 못하고 싸움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식당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씁쓸한 기분은 쉬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여파가 가장 큰 곳이 유통업체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만난 롯데마트 관계자의 말입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후 매출이 지속적으로 빠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30% 가까이 매출이 줄었어요. 유니클로 등 일본 브랜드가 입점한 마트일수록 매출 감소폭이 더 큽니다. MD들 사이에는 롯데마트에서만 하루 80억원 가량 매출이 줄었다는 말도 있어요.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국산 개념을 부각시키려 이벤트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농산물 기획전이 그것인데, 양파, 마늘, 감자, 고구마 등 가격이 많이 떨어진 우리 농산물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본 제품 전문 수입·유통사들은 불매 운동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편의점은 일본 상품이라면 전부 수거를 했고, 대형 마트들은 구석으로 진열 위치를 변경했습니다. 신제품 론칭은 꿈도 못 꿉니다. 일본이라는 말만 나와도 미팅 자체를 안해준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수입사는 대만이나 중국으로 수출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한 수입사 대표는 “살아남아서 연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식당 옆 테이블 일행처럼 불매운동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불매운동이 아니라 일본, 그리고 일본인에 쌓이고 쌓인 감정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장기화가 걱정되기도 합니다. 아쉬운 점은 정부가 지금의 사태를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진보’를 표방하는 정부가 말이죠. 불매운동의 저변에 깔린 ‘민족주의’는 결코 진보의 가치가 될 수 없습니다. ‘경제전쟁’이긴 하지만, 전쟁이라니요. 세상 어디에도 ‘민족주의’와 ‘전쟁’을 이야기하는 진보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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