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공무원을 만났다. 공무원 치고는 열정이 넘쳤다(공무원이라서 열정이 넘친다는 말이 훨씬 좋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할 일이 태산인데 진도가 안 나간다”고 호소했다. 진도 안 나가기는 누구나 마찬가지이지만, 다소나마 그에게 위로가 필요한 듯싶어 장단을 맞추었다.
 
“지금은 매년 혁명이 일어나는 시대인데, 정책 결정이 너무 느리죠? 제도 개선도 느려 터지고.”
“매년 혁명이 일어난다고요? 매일 일어나는 거 아녜요?”
어머나, 한술 아니라 몇술을 더 뜨는 이 사람, 공무원이 맞나 싶었다. 기왕에 맞춘 장단, 진도를 더 나갔다.

“매일 혁명이 일어날 정도로 변화가 빠르니 법과 제도도 매일 검토하고 매일 연구해야 해요. 매일 뭔가를 바꾸면 혼란이 일어날 수 있으니 적합한 타이밍 연구도 필요하고… 고로, 국회가 1년 내내 상시 열려야 해요. 지금 같은 시대에 정기국회 임시국회 회기가 따로 있다니, 이거야말로 조만간 원시적 제도로 지탄받을 겁니다.”
“그렇죠? 50년 전에 만든 제도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니, 정말 원시적이네요.”
의견이 일치되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뻔했다. 우리끼리 화색이 돌면 뭐하나.


최근 후다닥 읽어 해치운 책에도 그런 말이 있었다. 발표한 지 1년이 지난 논문은 조선시대 연구와 같다는 것이다(학자들이여, 모욕 느끼지 마시길. 테크, 엔지니어링 업계에 관한 것이니). 후다닥, 읽어 해치울 수밖에 없는 책은 <생각을 빼앗긴 세계>다. 세계의 새로운 지배자들 GAFA(Google, Apple, Facebook, Amazon)의 근본을 탐구한 책. 우리들의 생각을 마구마구 건져가고, 조목조목 해독하고, 이리저리 활용·조종하며 지배자가 된 그들 아래에서, 우리 모두 노예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음을 확인한 책이다.

하지만 노예가 반드시 불행한 것만도 아니다. 인류사를 통틀어 ‘주인’의 숫자보다 ‘노예’의 숫자가 훨씬 많았으니, 내 몸에도 노예의 DNA가 태반을 차지하고 있으리라. 그래서인가, 생각을 갖고 사는 것보다 생각 없이 사는 게 편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정말 생각이 사라지고 있다).


“생각을 하며 일하세요. 생각하지 않고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국가식품클러스터 투자설명회장에서 특강을 한 손대홍 그랜와이즈 대표의 말이 가슴을 쿡 찔렀다. 그 말을 조금 더 비즈니스적으로 바꾸면 이렇게 되리라.
“사업을 주도하십시오. 주도하지 않으면 끌려다니게 됩니다.”
개인이기 때문에, 연약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생각에는 이런 답이 가능하리라.
“GAFA 기업의 창업자들 가운데 기업인이나 거부의 후예는 아무도 없었다.”
그 중 한 기업인 페이스북의 모토다.
빠르게 변하고 낡은 것은 깨뜨려라. Move Fast and Break Things.
또 한 기업 구글의 초기 모토는 이랬다고 한다.
(변할지언정) 악마가 되지는 말자. Don’t be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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