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장마 끝에 현충일인 6일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는 이내 거세져 새벽까지 이어졌습니다. 밤새 그칠줄 모르던 비는 수도권 30~50mm, 남부지역은 100mm 이상의 강수량을 기록했습니다. 가뭄 끝에 단비치고는 적잖은 양이었습니다.

비가 오자 당장 처가의 체리농장 걱정이 앞섰습니다. 해가 뜨기를 기다려 장인에게 안부 전화를 했습니다. 체리농사를 짓고 수확기인 6월에 이렇게 많은 비가 온 건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피해를 걱정하자 “그래도 어쩌겠냐?”며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오랜 세월 하늘과 함께 농사를 지어온 농부의 초연함이 느껴졌습니다.

주말인 다음날 새벽, 아이들을 데리고 농장으로 향했습니다. 이른 아침을 먹고 장인과 함께 체리밭으로 나갔습니다. 비 영향으로 많은 체리가 터져있었습니다. 잘 익은 나무일수록 터진 체리가 많아, 반은 버려야했습니다. 묵묵히 체리를 수확하던 장인이 “다른 체리농가는 피해가 더 크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깨어진 침묵 사이로 우리 농장만 피해가 적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장인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조금씩 관수를 한 덕에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나 싶어. 오랫동안 갈증을 참은 사람에게 갑자기 물을 주면 벌컥벌컥 마시잖나. 그러다보면 탈이 생기게 마련이야. 체리나무도 마찬가지야. 심한 가뭄 뒤에 비가 내리면 뿌리부터 줄기, 잎으로 수분을 마구 흡수하게 되지. 그런데 가물 때도 조금씩 수분을 흡수하던 나무는 비가 와도 다른 나무들처럼 마구 수분을 흡수하지는 않아. 관수를 통해 나무의 균형을 유지시켜준 거지. 사람도 나무도 몸의 균형이 깨지면 거기서부터 탈이 나는 거니까.”

‘삶의 균형’. 우문 뒤에 얻은 현답이었습니다. 세상이치란 게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균형은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중용에 해당합니다. 중용에서 중(中)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용(庸)은 평상(平常)입니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평정심, 그게 중용이고 균형입니다.

서구 용어를 빌리자면 똘레랑스(관용, 寬容)가 있습니다. 똘레랑스는 자기와 다른 종교와 종파, 신앙을 가진 사람의 입장과 권리를 용인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작가 홍세화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한국사회에 필요한 덕목 중 하나로 똘레랑스를 역설한 바 있습니다. 

균형과 중용, 그리고 똘레랑스. 단어는 다르지만 그들이 지향하는 바는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2019년도 벌써 절반이 흘렀습니다. 자신의 삶은 얼마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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