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의 신’이 밝힌 가락시장 특등급 경매가 비결

“현대백화점에 산딸기를 입점한 예관기 농업인은 알이 크고 맛이 고른 산딸기를 대량 생산해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산딸기 제철을 맞아 서원 현대백화점 신선식품팀 MD가 추천한 예관기 농업인의 농장을 찾았다.


“제일 중요한 건 철저한 선별이에요. 재배 기술도 중요하지만 선별을 얼마나 잘 하느냐가 유통시장에서는 중요하거든요.”

봄 햇살이 따가운 4월 18일, 경북 청도군 매전면 농장에서 만난 예관기 씨는 선‘ 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터뷰의 운을 뗐다. 비닐하우스 한편에선 아침에 딴 산딸기의 선별과 포장 작업이 한창이었다. 밝은 조명 아래 산딸기를 검품하는 인부들의 손길이 바빴다.

가락시장서 1㎏에 6만5000원 낙찰

돈 안되는 고추 농사를 접고 산딸기 농사에 입문한 지 어느덧 9년, 예관기 씨 농장의 면적은 2㏊(6000평)에 달한다(블루베리 농장1300㎡ 별도). 비닐하우스 24개동과 노지 농장이 그의 일터다.

5월은 산딸기 출하가 한창인 때다. 2월 10일부터 수확해 6월 하순까지 연속 출하한다. 가락시장 경매 가격은 출하 초기 ㎏당 6만5000원으로 시작해 끝물엔 4만원대를 형성한다.

경매 시세는 ‘U자’ 곡선을 그린다. 전국 각지에서 출하량이 쏟아지는 4월엔 가격이 소폭 하락하다, 5월말부터 반등하는 패턴이다.

“오늘 새벽에 가락시장 중앙청과에서 온 문자인데, 한번 보실래요?”

새벽 경매가 끝나는 매일 오전 2시 무렵, 그가 거래하는 중앙청과에선 경매 결과를 문자로 알려준다. 이날 낙찰 가격은 ㎏에 4만원. 1팩(250g)당 1만원이다. 같은날 가락시장 산딸기 최저 경매가(1만7000원·㎏·특등급 기준)보다 2.2배 높았다.

재배·유통 중 습도 관리로 대량 납품 성공


산딸기는 수분이 많고 무른 과일이다. 그래서 아주 작은 상처에도 민감하다. 수확 중 조그만 흠집이라도 생기면 그 틈으로 균이 침투해 곰팡이가 슬기 쉽다.

재배 과정에서 제일 신경 쓰는 것도 물 관리다. 일단 토양 선택부터 중요하다. 물이 잘 안 빠지는 점질 토양 대신 사질 토양에 산딸기 묘목을 심어야 한다. 낮에는 물을 충분히 주되, 저녁에는 수분 공급을 차단해 과습을 방지한다. 잎사귀에 수분이 남아 있으면 잿빛곰팡이병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산딸기 농사 하면서 제대로 된 산딸기를 한 알도 수확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분 관리를 못 해서 그런 거거든요. 그만큼 산딸기 재배가 어려워요.”

수확할 때도 한 알씩 조심스레 따야 한다. 자칫 힘이라도 주면 짓눌려 멍들기 때문이다.

수확 시기는 색깔로 판단하는데, 검붉은 색을 띠어야 잘 익은 것이다. 선홍빛이 돌면 아직 덜 익은 산딸기다.

수확 후엔 작업장에서 최종 선별 과정을 거친다. 핀셋으로 산딸기 꼭지를 떼고, 상처 났거나 덜 익은 열매가 섞여 있으면 골라낸다. 골라낸 산딸기는 버리지 않고 효소 액비로 만들어 1년간 발효한다. 산딸기 농장에 다시 거름으로 주려는 용도다.

“우리 농장 산딸기는 냉장고에 일주일 이상 보관해도 곰팡이가 피지 않는데요. 그 비결 중 하나가 바로 이 ‘특수 포장재’입니다.”

예 씨가 부직포 한 장을 건네 보인다. 얇고 부드러운 이 부직포는 섬유 관련업을 하는 친구에게서 구했다. 일반 딸기 농가에서 쓰는 거친 조직의 포장재와 확연히 다르다. 이 ‘특수 포장재’를 산딸기 팩 밑에 깔면 습기를 흡수해 오랫동안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 물론 단가는 일반 포장재보다 높지만, 품질 유지를 위해 고수하고 있다.

유통 상인들과 작황 정보 공유

농사짓는 입장에선 생산만 하기에도 하루가 짧다. 대부분의 농가들이 농작물을 농협에 일괄 출하하거나, 일명 ‘밭떼기 상인’이라 불리는 포전 상인들에게 넘기는 이유다. 하지만 이 방식엔 맹점이 있다. 가격 결정권을 유통업자가 전적으로 갖고 있다는 점이다.

고추 농사를 짓던 시절 농산물 유통 구조를 간 파한 예 씨는, 유통업자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려면 품질에 누구보다 자신 있어야 했다. 목표를 달성하자 유통업체에도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내로라하는 중도
매인들이 앞다퉈 ‘물건을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가락시장 청과 중도매인들에게 시식용 산딸기를 수백만원어치 보냈어요. 지난 달에 보낸 것과 이 달에 보낸 것, 지난 주 물건과 이번 주 물건의 품질이 똑같으니 도매인들이 인정하기 시작하더군요.”

연간 10톤의 안정적인 수확량과 씨알 굵은 산딸기, 균일한 품질이 중도매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농산물 특성상 품질이 균일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걸 해내자 중도매인들 사이에서 ‘산딸기의 신’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한 유통업체와 오래 거래하다 보면, 간혹 ‘단가 후려치기’를 당할 때도 있지 않나요?” 조심스레 꺼낸 질문에 예 씨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그러면 제가 가만히 있지 않죠.”라고 받아넘긴다.

일단 거래를 튼 후에도 꾸준한 시세 확인은 필수다. 예 씨의 경우 직거래 주문 손님들도 많아, 시세 변화에 민감한 편이다. 경매 가격이 높다고 방심하지 않고, 백화점 판매 가격을 틈틈이 확인해 자신이 ‘제값’을 받고 있는지 점검한다.

지속적인 스킨십도 중요하다. 그의 전화기엔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 중도매인들과 청과회사 임원들, 백화점 식품 담당 직원들의 연락처가 빼곡히 저장돼 있다. 수확기엔 작황 정보도 기꺼이 공유한다. 산지의 기상 상태와 ‘농장 컨디션’을 먼저 오‘ 픈’하면 상대방도 유통 소식을 전한다. 상부상조하는 관계가 지속된다.



“경남 김해시 상동면이 산딸기 주산지였는데, 4대강 사업 때문에 상당 부분 물에 잠긴다는 뉴스를 봤어요. ‘아, 이거다’ 싶어 산딸기 농사를 하게 됐죠.” 예 씨가 산딸기 농사를 택한 계기다. 수요는 일정한데 공급이 부족해질 거란 걸 예상한 혜안이다.

예 씨가 재배한 산딸기는 현대백화점 매장 중에서도 부촌 지점에만 입점된다. 압구정본점, 무역센터점, 판교점에서 판매한다. 

최근엔 아들과 함께 블루베리 농사도 시작했다. 같은 베리류 과일인 산딸기 농사 경험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블루베리도 품질을 인정받아 백화점에 납품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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