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은 균형과 조화, 공공의 역할을 늘 고민한다


이병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은 지난해 2월 취임했다. 취임 당시 aT 분위기는 긴장이 역력했다. 그 동안 aT 사장은 농식품부 관료 출신들이 부임했었는데 민간 기관장을 맞이한 데 대한 부담이 중요한 배경이었다. 그 뒤 1년, 비교적 조용하게 지나갔다. 한 관리자급 임원이 이렇게 말했다. “혁신은 조용하게, 본질에 충실하는 방향으로 해야죠.”

이병호 aT 사장의 전공은 ‘농경제’이고 ‘남북농업 교류’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 사장의 이미지는 다소 날카롭지만 사색이 많고 토론을 중시하는 형이라는 평이 많다. 인터뷰 중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공공’, ‘조화’, ‘균형’과 같은 단어였고, 예민한 정책에 대해서는 “토론을 하며 결정한다”고 표현했다. 토론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물었더니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라고 답했다. 부서로 가기도 하고, 사장실에서 하거나, 식사 중에 하거나… 이런 점들을 고려해 구분하자면, 그는 ‘지시형’보다 ‘토론형’이나 ‘융합형’ 리더라는 느낌이 들었다.

공공, 조화, 균형 위해 “시시때때 토론한다”

aT는 농식품 관련 공공기관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최대한 ‘유통’에 초점을 두고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사실상 ‘농업-농촌’이 구심력으로 작동했다. 우선, 지난 1년에 대한 회고를 물었고 몇 가지 농식품 유통에 관한 핵심적 사항을 체크했다.

“인간의 삶에서 필수 요소인 의식주 중 식(食)을 담당하는 기관이 aT입니다. 역할이 많기도 하지만 매우 중요한 기관이죠. 생산된 농산물의 국내 유통, 해외 수출, 식품과 외식산업에 대한 지원까지, 각종 정책과 업무내역을 살펴보면서 미래 50년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이 사장은 취임 100일 즈음 ‘aT 신경영 선포식’을 가졌다. (aT는 1967년 설립된 준정부기관이다. 지난 50년을 기반으로 향후 50년에 대한 비전을 담아 100년 aT의방향성을 만들었다는 답이다).

우리나라 농식품 유통 시스템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이 사장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사장을 역임하며 도매시장 관리를 해봤고, 통일농수산사업단을 운영하며 남북 교류에 앞장섰던 이력이 있다. aT는 그것들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정책적 영향력도 크다.

“aT의 초기 역할은 수급 관리를 통한 유통의 안정성 추구였습니다. 하지만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시장이 복잡해졌고, 그런 과정에서 aT 산하 많은 회사들이 민간으로 넘어갔죠. 관계하는 영역은 넓지만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공공의 수단들은 제약돼 있기도 해요. 한정된 자원과 수단들을 가지고 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 역할입니다. 그런 점에서 수급 관리가 정말 중요합니다. 식품 제조업체, 외식업체들이 국내산을 기피하는 이유가 뭘까요. 가격 문제도 있지만 안정적 공급에 대한 불안감이 클 겁니다. 일단 중요한 것이 수급 정보 관리, 데이터 관리로 보고 있습니다. 예측력을 최대한 높여서 농민을 포함해 산지 유통과 소비지 유통 분야의 여러 플레이어들에게 전달하고 의사 결정에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소농 위한 판로 보장 대책 추구

aT는 지난해부터 농산물유통종합정보시스템 5개년 계획을 추진 중이다. 농산물 생산정보 DB 통합과 인공지능을 활용을 통해 수급 예측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일종의 시장 지원 시스템이지만 이 사장의 사고는 생산자들을 위한 지원으로 회귀했다.

“농업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게 ‘뭘 심어야 할지 모르겠다’, ‘팔 데가 없다’는 겁니다. 유통과 관련해 생각해 보면, 일본과 한국의 농민들 사이에 큰 차이가 있어요. 일본이나 한국이나 농업 환경은 아주 유사한 구조예요. 고령화, 인구 감소, 소수의 기업농이 있고 다수의 고령화된 가족농이 있죠. 그런데 일본의 가족농들은 판로 걱정을 안 해요. 가장 큰 배경이 2만여개의 직매장입니다. 우리는 반대죠. 소규모 농가들의 판로가 보장되지 않고, 대농들이 고소득을 올리죠. 이런 것들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유통 관련한 중요한 과제입니다. 한쪽으론 대규모 유통, 전국 단위 유통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다른 쪽으로 지역 내의 유통을 순환시키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로컬푸드 직매장, 직거래 장터. 공공급식 연계등등의 푸드플랜도 이런 정보를 기초로 나가야겠죠.”

신유통 시장 대응, 새로운 도전과제

최근 유통시장 최대 관심사는 온라인 거래 확장세이고 품목으로는 간편식(HMR)을 꼽지 않을 수 없다. aT는 이런 변화에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대형 유통업체들이 위축되고 쿠팡이나 소셜 마케팅 업체들이 엄청나게 성장하는 양상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들에 우리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어떻게 개입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농수산물사이버거래소와 자주 토론합니다. 거래액이 3조원 규모를 넘어서 B2B거래의 대표 모델로 자리 잡았는데, 더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방안을 찾고 있어요. 농산물거래소 같은 형태로 온라인 경매 시스템을 운영한다든가, 산지조직과 식품조직 간의 대량 거래 중개 체계를 구축한다든가… 신유통 시장은 모든 영역이 넘나들며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잖아요? aT도 혁신적인 정책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HMR이나 공유주방 같은 것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라서, 새로운 도전과제로 받아들이고 토론하는 중입니다.”

이 사장은 각종 식품박람회의 특징과 역할에 관심을 보이며 ‘박람회별 차별성’이 있는지 물었다. 정부 산하기관에서 관여하는 박람회들의 통합 필요성에 대한 의견이다. 몇 개의 대형 박람회별 성격을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일 뿐 특별한 견해를 표현하지는 않았다. 인터뷰도 일종의 토론으로 여기며 ‘듣는’ 모양새였다.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소비자 기대치는 높아지고, 유통 주체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라서… 우리도 그렇지만 언론의 역할도 너무 중요합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라는 긴 이름에서 나타나는 업무 영역은 광범위하지만 이병호 사장의 인식은 농업에서 출발하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가 추구하는 경영의 혁신도 속도보다는 안정, 방향성 세우기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저작권자 © 더바이어(The Buye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