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盞) 먹새그려 또 한잔 먹새그려.
곶 것거 산(算) 노코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새그려.
이 몸 주근 후면 지게 우희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의 만인(萬人)이 우러네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白楊) 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굴근 눈, 쇼쇼리 바람 불 제, 뉘 한잔 먹쟈할고.
하믈며 무덤 우희 잔나비 휘파람 불제, 뉘우친달 엇더리.


조선 중기 문신이었던 송강 정철(1536~1593)의 작품은 가사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힙니다. 쉬운 우리말을 아름답게 엮어 자연과 인생무상, 그리고 연인에 대한 애절함을 노래한 작품들은 수 백년이 흐른 지금 읽어도 그 여운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작품 중 좌천과 유배로 은둔의 시기를 보내며 나온 소산인 경우가 많습니다. ‘관동별곡’, ‘사미인곡’ 같은 작품이 그러한 예입니다.

송강 정철은 당쟁의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부침이 심했던 정치인이었습니다. 순탄치 못한 벼슬살이는 그의 강직한 성품과 타협을 모르는 인품에서 비롯됐다고도 합니다. 대학자이자 선조시대 정3품 벼슬을 지냈던 기대승이 경치 좋은 곳에 놀러 갔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에 비할 만큼 훌륭한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요?”라고 묻는 제자의 질문에 “정철이 그런 사람이다.”라고 서슴없이 답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고매한 인품의 송강 정철이였지만 술 때문에 구설이 잦은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반대 세력에게 논핵을 당해 선조가 직접 정철에게 은 술잔을 하사하기도 했는데 허용된 술은 하루 딱 석잔. 그러나 ‘장진주사’ 문장에서 가늠되듯이 조선의 내로라하는 주당이었던 정철이 어찌 석 잔에 만족했겠습니까? 그는 직접 방짜로 늘린 술잔에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임금의 하사품을 함부로 두드려 폈겠느냐며 반대파의 모함이라고 후손들은 펄쩍 뛰었지만 정철이 쓰던 술잔은 지금도 현존하고 있고 그가 술을 즐긴 주당이라는 사실은 엄연해 보입니다.

허균은 정철의 ‘장진주사’를 읽고 ‘절세미인이 화장도 하지 않고, 깊은 밤 촛불을 앞에 두고 앉아 노래를 부르다 끝까지 부르지도 못하고 그만두는 듯하다.’고 평했습니다.

술을 마시며 인생 무상함을 읊조리다 보면 비장함이 이를 데 없기 때문일까요. 꽃 꺾어 술잔의 수를 세어가면서 무진무진 술을 먹자고 하는 정철의 노랫말이 귓가에 스치는 춘삼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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