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내가 뉴욕제과점 막내아들이었다는 사실를 알게 됐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늘 똑같다. 다들 “빵 하나는 엄청나게 먹었겠구만”이라고 말한다. 그 부러워하는 표정을 볼 때만은 재벌 2세도 마다할 만하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빵의 지위는 그처럼 높았다. 덩달아 제과점 막내아들의 지위도 지금의 소설가 못잖았다. 당연하게도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더 많은 빵을 먹었다. 거의 매일같이 빵을 먹었다. 그러다보면 한 가지 깨닫는게 생긴다. 생과자나 햄버거나 롤케이크처럼 비싼 빵은 매일 먹는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매일 먹을 수 있는 빵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단팥빵, 크림빵, 곰보빵, 찹쌀떡, 도넛, 우유식빵 같은 제과점의 기본적인 빵에만 질리지 않을 수 있다.”

지난 기억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가꾸는 과정에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김연수의 대표작이자 자전소설 ‘뉴욕제과점’은 파편으로 남은 기억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기까지 지우고 다시 쓰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고 나서야 가능했던 소설일겁니다.

‘나는 이 소설만은 연필로 쓰기로 결심했다. 왜 그런 결심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연필로 소설을 쓴 것도 꽤 오래 전의 일이다.’라고 작가 김연수는 소설에 쓰기도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연필로 그린 유년의 풍경화 같은 ‘뉴욕제과점’ 작품은 작가 김연수의 여타 다른 작품들과는 꽤나 궤를 달리 합니다. 마치 화려한 메이크업을 지운 뒤 세수한, 말갛지만 낯선 여배우의 얼굴을 보는 기분이랄까요. 댄디하고 파격적인 김연수특유의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의 긴장감 대신 조금은 찌그러지고 촌스럽고 불편한 추억 속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랄까요.

‘서른이 넘어가면 누구나 그때까지도 자기 안에 남은 불빛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들여다보게 마련이고 어디서 그런 불빛이 자기 안으로 들어오게 됐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한때나마 자신을 밝혀줬던 그 불빛이 과연 무엇으로 이뤄졌는지 알아야만 한다. 한때나마. 한때 반짝였다가 기레빠시마냥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게 된 불빛이나마. 이제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불빛이나마.’

작가 김연수의 따뜻한 애무는 계속됩니다. 벌써 나 자신에게 지친 게 아닐까. 싶은 독자에게 나즈막이 건네는 위로의 문장들입니다. 내가 살아갈 세상에 괴로운 일만 남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내 안에 고스란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작가는 ‘뉴욕제과점’에서 말합니다. 멋들어지진 않더라도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토닥여줄, 당신의 뉴욕제과점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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