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그리움을 선물하듯


"아침햇살이 황금색이다. 놈 항. 한 달 반 만에 다시 왔다. 저번에는 녹색 평야 같았는데 그새 산 위에는 흰 눈이 쌓여 있다. 짧은 여름이 끝나버린 것이다. 이제 이곳은 오랫동안 겨울이 진행된다. 떡국이 나왔다. 내일 오전 10시 15분, 2조로 하선 예정. 그리고 갈비 구워 저녁 먹다. 이제 이 배에서 공식적인 식사는 끝났다. 마지막날인 것이다. 아홉시에 피자 먹는다는 방송이 나왔다. 젊은 승조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하선. 안녕 우리 배. 배는 타는 순간 운명공동체가 된다.”


여수 거문도가 고향인 한창훈 작가는 인생 8할이 바다입니다.  일곱 살에 낚시를 하고 아홉 살엔 해녀였던 외할머니에게서 잠수하는 법을 배웠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변방의 삶을 주로 써왔습니다. 그래도 지치지 않았던 걸까요. 바다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 대양 항해 프로젝트를 기획해 동료 작가들과 큰 컨테이너선을 타고 두 번의 대양 항해를 하고 북극해를 다녀오기 도 했습니다. 책을 펼치면 먼 바다로 나가 갑판 위에 서서 작가가 건네준 술잔을 들 고 서 있는 기분이죠. 풍랑에 시달리고 외롭지만 작가는 외칩니다. ‘자 출항합니다, 건배!’ 바다가 언 것을 유빙이라 하는데 유빙을 조각내서 보드카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기도 하고 노란 달이 수평선 위에 뜬 북극의 아름다움에 이미 대취한 작가는 갑판에서 와인을 홀짝이기도 합니다. 여행에 동행했던 동료이자 시인의 탄식은 먼 바다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킵니다. 가도 가도 푸른 바다뿐이고 하루 종일 지나가는 배 한척 볼 수 없던 날, 안상학 시인이 ‘하. 진짜 물 많데이’ 탄식하며 ‘누가 이것을 지구라 캤노, 이게 수구지, 지구가? 이 별이 뭔고 했더니 허공에 떠 있는 푸른 물방울이었구만그래.’라 노래합니다. 우주에 떠 있는 푸른 물방울, 우리가 사는 곳을 작가는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담배를 피우러 선미 갑판에 나가니 섬 구경하러 나온 선원들을 보며 작가는 이런 것이 다 반가울 지경이 되었다고 적어갑니다. “아무리 바다와 친해도 우리는 땅의 종족인 것. 같이 살 수 없는 존재와 친한 것. 그게 나다. 남박사님이 보드카와 데킬라를 가지고 왔다. 그동안 일했던 내 보수이다. 그래서 마셨다.”

저작권자 © 더바이어(The Buye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