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호수 앞에서 먹는 차가운 샌드위치



나탈랴는 몇 초 만에 까만 리놀륨 장판 같은 빙판 위에 모포를 펼치고는, 그 위에 생선살로 속을 채운 빵 한 개와 코냑과 커피 보온병을 올려놓는다. 우리는 그 주위로 몸을 눕힌다. 러시아인들에게는 순식간에 향연의 분위기를 만드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길가에 자리를 펴고 지나가는 나를 부르는 농부들을 만난 것이 한 두 번이었던가? 그들 농부들의 대화는 주로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날씨, 둘째는 길의 상태, 셋째는 운송수단의 가격이다. 이따금 도시를 화제로 삼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그들은 만장일치에 이른다. 그런 좁아터진 곳에서 겹겹이 포개져서 사는 것이 미치지 않고서야 가능하냐는 이야기다.


스스로를 ‘Wanderer(방랑자)’라는 괴테의 별명을 빌려 쓰는 작가 실벵테송은 장작 난로 하나, 개 두 마리, 그리고 호수를 향해 열린 창문 하나로 삶은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는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상인 메디치상 에세이 부문 2011년 수상작입니다. 프랑스 문단의 뛰어난 여행 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실뱅 테송이 파리를 떠나 시베리아 바이칼 호반의 숲속 오두막에서의 6개월 생활을 담은 수필입니다. 호숫가와 오두막이라니. 여행이 직업인 작가의 호젓한 (도시인의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것 자체로 럭셔리한!) 21세기형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 아닐까 넘겨 짚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실뱅 테송은 마흔이 되기 전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오두막 생활을 결심했고 ‘은둔’ 일기를 노트에 적어나갑니다.

추위에 유난히 약한 기자가 보기에도 강풍과 눈보라, 산사태가 두려운시베리아의 침엽수림의 대자연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작가가 근사해 보였습니다. 절대 고독에서 나 자신을 찾는 여행을 떠났으니, 챗바퀴 도는 삶의 직장인이라면 누구라도 그 용기에 부러움을 느꼈을 겁니다. 수십권의 책을 공들여 선정해 가져간 뒤 철학가들의 온갖 아포리즘과 명언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모습에서 작가의 허세와 수다스러움이 느껴지는 대목도 있었지만요.


영하 33도이다. 이제 트럭은 안개에 녹아들었다. 정적은 하얗고 조그만 부스러기들의 형태로 하늘에서 떨어진다. 홀로 된다는 것, 그것은 침묵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돌풍이 한소끔 인다. 싸락눈이 시야를 흐린다. 나는 목청껏 괴성을 지른다. 두팔을 활짝 벌리고 차디찬 허공에 얼굴을 한번 쭉 내민 다음, 따뜻한 곳으로 들어간다. 나는 내 삶의 부두에 닻을 내렸다. 내게도 어떤 내적인 삶이 있는지, 이제 드디어 깨닫게 되리라.


‘내가 나를 견딜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품고 실뱅 테송은 시베리아 숲의 은둔자가 됩니다. 대자연의 고독과 그가 도시에서 품고 온 고독이 마주치는 순간, 순간을 영위하며 도리어 삶에 대한 내면의 희망을 차곡차곡 쌓아갑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당신의 일상이 빈곤하다고 해서 일상을 탓하지 마시오. 충분히 시적이지 못하여 일상의 풍요함을 불러내지 못하는 당신 자신을 탓하시오.’우리 삶이 자유로워지길 바라면 우리가 자유롭다고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 있죠. 실뱅 테송이 바이칼 호수의 은빛 수면을 바라보며 먹었던 차가운 생선 샌드위치와 보온병에 담긴 커피 그리고 보드카 한 잔, 차디찬 음식이 주는 삶의 위로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세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땐 보드카 한 잔이 간절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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