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를 공부해 소비자가 원하는 맛을 추구하다”


김영하 베버리지 아카데미 대표는 전국 300여곳의 카페와 8곳의 프랜차이즈 본사의 음료 메뉴를 설계하고 레시피를 제공한 베버리지 컨설턴트다. 국내에서 강세를 보이는 소프트드링크 시장에서 메뉴 개발 시 놓쳐서는 안 되는 필수 정보를 김 대표에게 들었다.


맛있는 음료 위해서는 재료 이해 선행돼야

김영하 베버리지 아카데미 대표는 좋은 소프트드링크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야 한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아직 국외에도 이론이 정립되지 않은 음료용 재료를 공부하기 위해 연 2억여원 소득의 대부분을 연구에 재투자한다.

김 대표는 고미술품 컬렉터인 아버지와 지인들 덕에 어릴 적부터 차 문화를 접했다. 그는 1999년 바텐더를 시작으로 하드드링크를 공부하다가 2006년부터는 커피와 소프트드링크로 범위를 넓혔다. 이후 커피 관련 회사, 도매시장, 유통업체에서 근무하며 과일과 유통시장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2012년부터 그동안 공부했던 과일과 음료의 궁합에 대해 본격적으로 컨설팅을 시작했다.

김 대표가 말하는 재료의 이해란 재료의 갈래와 재료간 어울림에 대한 이론이다. 음식은 층을 나눠 맛을 조합할 수 있지만 음료는 불가능하다. 음료는 여러 재료가 층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완전한 혼합을 이루는 재료의 규칙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법칙을 공부하지 않고 무작정 섞으면 음료를 망치게 된다.

과일이나 식재료는 와인처럼 지역에 따라 맛이 다르다.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만 하더라도 시트론, 포멜로, 만다린, 파페다, 쿰쿠밧트 등 5가지의 큰 분류로 나뉘며 다양한 교배종이 존재한다. 같은 시트러스 계열임에도 오렌지와 레몬은 서로 완전 배합(perfect matching)되지 않아 섞으면 좋은 맛을 내지 못한다. 김 대표는 이럴 때는 자몽이 키워드가 된다고 말한다. 자몽이 각각의 과일과도 잘 어우러지기 때문에 맛을 완전히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가 돼 서로 다른 두 재료의 맛이 조화로워진다.

“이렇게 맛을 연결해주는 중간재 역할을 하는 과일은 보통 한쪽 재료와 조상이 같은 재료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일부 중간재가 종을 초월하는 경우도 있죠. 이러한 변칙을 찾기 위해 세계를 여행하며 많은 식재료를 섭렵합니다.”

이외에도 김 대표는 감을 음료로 활용할 때는 감과 씨앗 형태가 비슷한 태국 과일 치쿠를 넣은 시럽이 감의 맛을 풍부하게 살려준다고 귀띔했다. 아이스크림빈이 카카오빈과 형태가 비슷해 잘 어울리는 등 음료의 맛을 높여줄 수 있는 재료 활용 방법들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재료로 음료의 한계를 깨다

김 대표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재료를 섭렵하지만 카페 레시피를 제공할 때는 오로지 국내에서 수급 가능한 재료를 사용한다. 현실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에 따르면 실제 카페 메뉴는 재료 수급, 원가, 보급 기간, 간편성이 중요하다. 그는 “무엇보다 의뢰자의 생각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상권에서 원하는 맛을 추구해야 하는 점과 음료를 한계를 가두지 말 것을 당부했다.

“강남의 오피스 밀집 지역은 청담동보다 당도가 약 3배 더 높은 음료의 선호도가 높습니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지역일수록 맛이 강하거나 당도가 높은 음료가 소비되는 것이죠. 이런 지역은 음료 구매 빈도도 3배 더 잦습니다. 반면 청담동 등 특정 지역은 음료가 너무 달면 잘 팔리지 않습니다.”

김 대표는 음료를 소비자의 선호도에 맞춰야 하지만 메뉴를 고안할 때 음료의 한계를 특정지어서는 안된다고도 말한다.

“서양은 F&B라는 표현이 있지만 동양은 음료와 음식을 구분 짓지 않는 문화입니다. 생선 매운탕의 육수 또한 음료가 될 수 있어요. 제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죠스에서 어묵 티백이 나온 이후 반대의견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김 대표는 쉽게 스타가 되려는 외식계의 현 세태를 지양하며 노력과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음료 분야에 오래도록 머물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주목받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아야 하고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10년은 더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훗날 제 경험과 수집한 자료들을 통해 음료 이론의 초석이 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서울에 연구소를 차려서 다양한 세계의 식재료를 누구나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음식의 언어’의 저자 댄 주래프스키는 ‘혁신은 언제나 작은 틈새에서 발생한다. 문화의 교차점에서 각 문화가 서로 이웃에게 빌려온 것을 수정하고 더 훌륭하게 만드는 과정을 거쳐 창조된다’라고 했다.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 김 대표가 세계를 누비며 쌓은 경험을 접목시켜 만들 음료가 기대되는 이유다.


●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한국 과일

김영하 베버리지 아카데미 대표가 만든 대표적인 메뉴 중 하나는 카페 뎀셀브즈의 참외 스무디다. 김 대표는 “참외는 해외에서 볼 수 없는 과일”이라며 해외에 통할 국산 과일로 참외, 귤을 꼽았다.

“온주귤은 세계 다른 지역의 만다린, 탠저린, 클레멘타인과 비교해도 과육이 훌륭하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김 대표는 참외 유명 산지인 성주군에서 참외 가공 식품 공장 계획이 무산되어 결국 참외를 갈아서 사료로 만드는 사료 공장이 되어버린 점과 제주의 귤 박물관에 방문해도 상품의 수가 한정적이고 귤의 맛을 제대로 살린 상품이 없었던 점을 지적하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그는 감귤류를 가공품으로 만들어 다양한 제품으로 발전시킨 일본 에히메현, 일본 아오모리 지역 특산물인 사과를 다양하게 가공해 판매하는 에이 팩토리를 예로 들어 훌륭한 맛을 지닌 국내 과일을 다양한 상품으로 개발해 상품성이 부각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김영하 대표가 고안한  메뉴들

▲호주산 애플망고를 사용해 만든 애플망고 스무디. 애플망고의 특징적인 붉은색과 노란색을 살리기 위해 석류시럽을 같이 섞어  망고껍질의 붉은색과 노란색의 그라데이션을 강조했다. 가니시 역시 애플망고 껍질의 붉은 부분과 노란 부분만을 잘라내서 잔에 장식했다. 한가지 과일이 여러 색을 가지고 있을 때, 각각의 색을 따로 활용하여 좀더 스타일리시하게 연출한 사례다.

▲수박 에이드. 김 대표는 수박은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향이 아주 강한 과일이라 에이드에 적합하다고 설명한다. 

"청량함이 느껴지는 메뉴인 에이드와 수박의 이미지가 잘 어울리죠. 향이 강하기때문에 희석을 시켜 에이드로 만들어도 좋지만, 탄산수로 만드는 에이드보다는 물로 만드는 에이드를 추천합니다. 수박의 과즙을 짜넣은 물에 약간의 감미료를 넣은뒤 추가적으로 향이 계속 우러 나올 수 있도록 예쁘게 주사위 썰기 한 수박 과육을 넣어줍니다.  이때 잘게 부순 얼음을 사용하여 그 얼음과 얼음 사이에 수박의 과육이 고정되게 하면 좀 더 예쁘고 효율적으로 우러나는 음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오미자에이드. 보통은 오미자청을 사용해 에이드를 만든다. 하지만 이 음료는 잘 익은 오미자를 설탕을 넣어 찧어준 뒤 물을 부어 시럽으로 만들어 사용한 음료다. 오미자 시럽에 탄산수를 붓고 잘 익은 오미자 열매로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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