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환경에 따라 경매제도 변화돼야…중도매인의 역할 다양해질 것
정상균 한국농산물중도매인조합연합회(이하 한중연) 서울지회장은 유통환경에 따라 가락시장의 경매제도도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제도는 30여년 전의 제도로 지금의 환경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제도의 변화에 따라 중도매인들은 규모화하거나 업무를 더욱 세분화해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한다.
“중도매인들은 규모화 되고, 유통은 다각화되어야 합니다.”
정상균 한중연 서울지회장은 현재 경매제도가 유통의 흐름에 따라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서울 가락시장 중도매인은 채소 담당이 583명, 청과 담당이 415명, 수산 담당이 180여명으로 총 1100여명이다. 가락시장의 연매출은 약 4조원.
정 회장에 따르면 중도매인 중 흑자를 보는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80%가 현상유지이며, 10%는 몇 개월 내에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일부 중도매인에 따르면 80% 도 긍적적으로 봐준 수치이며, 65% 정도가 현상 유지가 가능한 곳이라고 한다.
정 회장은 중도매인들이 규모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일부 중도매인들 사이에서는 다른 중도매인과 연합하거나 단순히 세를 받는 형태로 운영하기도 한다. 주먹구구식의 형태가 아닌 체계적으로 규모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 중도매인들 사이에서 또 다른 움직임은 온라인 판매다. 현재 중도매인의 35%가 2세들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정 회장에 따르면 이들은 소셜커머스와 오픈마켓을 통해 판매도 하고, 홍보도 잘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사 온라인몰을 개설해서 판매하기도 한다.
가락시장 터줏대감
정 회장 역시 동화청과에서 고추와 파프리카경매를 담당하는 175번 중도매인이다. 고추만 일평균 2000만원의 매출을 낸다. 그는 1977년 용산에서 배추, 무를 위탁판매했으며, 1985년 가락시장이 생기면서 터를 옮겨 고추와 파프리카로 품목을 변경,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재 대형유통업체와는 거래하지 않고, 군납과 중소형 마트, 외식업체를 중심으로 거래한다.
가락시장의 터줏대감인 그가 보는 최근의 유통 환경은 이렇다. 유통 트렌드가 가격보다 품질 중심이 되다 보니까 생산자들의 피드백이 빠르다.
좋은 거래처를 갖고 있는 중도매인과 장기 거래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품질이다. 이에 산지에서도 좋은 상품을 올려 보내려고 노력한다. 또 가락시장으로 올려 보내는 상품 상자에 생산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기재하게 되다 보니, 일명 ‘속박이’라고 하는 신선도와 질이 떨어지는 상품을 넣는 꼼수를 부리는 일은 많지 않은 편이다.
“중도매인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가장 좋은 상품을 적절한 금액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중간 상인이죠. 중도매인이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제도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정 회장은 우리나라의 경매제도가 유통환경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초기 중도매인은 개인 위탁을 받아 자유롭게 상품을 운용했다. 그러나 가격 안정성이 떨어지고, 거래도 투명하지 못해 현재와 같은 법인에 의한 경매제도가 정착됐다.
선진국의 경매 비율 10%…우리나라는 90%
그러나 환경이 30여년 전과 달라졌다. 일례로 미국은 로컬푸드를 통한 직거래가 활성화 되고, 일본, 프랑스 역시 경매가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경매제도를 벤치마킹한 일본조차도 도매시장의 경매 비율은 10%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반대로 90%가 경매로 거래된다. 경매제도만 30여년 정착되고 나니, 제도의 불합리성도 드러났다. 아무리 상품을 잘 만들어도 좋은 가격을 받지 못하자, 농가에서도 상품을 경매에 올리지 않고 직거래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경매제도를 위한 환경이 제대로 갖춰진 것도 아니다. 산지에서 상품이 올라와 경매시간까지 대기하기에 충분한 냉장·냉동창고를 갖추지 못한 것이다.
“프랑스 경매장은 돔 형태로 되어있어 냉장이 가능해서 상품의 신선도를 지켜줍니다. 일본은 상품을 냉장창고에 넣어두고, 샘플만으로 경매하는 방식이죠. 우리나라는 여름에 신선한 상품이 올라와도 금세 변질되기 때문에 상품의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시장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시장도매인제도도 그 중 하나다. 정 회장은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이 지난해 시장도매인제도 거래로만 연매출 4000억원을 넘기면서 정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도매시장의 변화에 맞춰 중도매인들의 변화도 반드시 필요하다.
“선진국처럼 국내 도매시장도 분명 변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중도매인들은 스스로의 포지션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도매상 제도를 따르는 중도매인들은 규모화하고, 경매제도를 따르는 중도매인들은 또 그에 맞게 대비해야지요. 스스로 자신의 포지션을 고민하고 그에 따른 경쟁력을 갖춰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