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은 말 없는 세일즈맨입니다”

박형우 한국포장학회 회장은 우리나라 포장산업의 발자취를 꿰고 있는 포장 박사다. 올 1월 한국포장학회 회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한국식품연구원에서 30여년간 포장과 관련된 일을 했다. 박형우 회장이 제시하는 국내 식품 포장산업의 방향.


소비자 트렌드에 맞춘 포장 연구 필요

◀박형우 한국포장학회 회장.

우리나라는 소비자 수요가 늘고 있는 분야의 포장재 연구가 부족하다. 전자레인지 조리용식품 포장재가 대표적이다. 박 회장은 “소비트렌드에 따라 앞으로는 소포장과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HMR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며 “이런 식품들에 맞는 가열도구와 포장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식품, 조리도구, 포장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박 회장은 강조했다.

식품의 맛을 해치지 않도록 조리하는 방법까지 고려해 포장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특히 HMR 제품은 대부분 전자레인지를 사용해 조리하는데, 국내에서 전자레인지용 포장재를 개발하고 있는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했다.

유럽에서는 친환경 포장재에 대한 관심이 높다. 친환경 포장재는 결국 기능성 포장재다. 이는 포장 원가가 올라간다는 뜻이다. 박 회장은 “기업 입장에서 포장재는 ‘쩐떼기’ 장사였는데 친환경 포장재는 ‘원떼기’가 되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포장 가격이 비싸지면 결국 소비자 원가도 올라간다고 했다. 비싼 포장재를 쓰는 회사가 드문 이유다.

친환경 포장재는 일반 포장재보다 30~50%비싸다. 제품 생산액이 30억원 정도일 때 2배가 비싸지면 생산액은 약 6억원 더 늘어나는 셈이다. 이렇게 비싸진 포장재 때문에 생산원가도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박 회장은 “유럽 수출을 고려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친환경 포장재 사용에 대비해야 한다”며 “친환경 포장재 시장은 국내에서도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포장은 말 없는 세일즈맨이라고 말하는 박 회장은 “친환경 포장재가 하나의 마케팅 요소로 작용해,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했다면 세일즈에 성공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가 정책지원과 포장 전문가 필요

박 회장은 “국내 포장산업이 발전하려면 다양한 정책지원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며 “정부부처마다 각자의 이해관계를 따지느라 적극적인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무엇보다 포장학을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박 회장은 강조했다.

국내 포장 관련 학과는 10여개 정도에 불과하다. 수도권 4년제는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 있는 패키징학과가 유일하다. 박 회장은 “특수성을 갖는 학과임에도 포장산업 규모에 비해 전공자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시장 수요는 많은데, 전공자가 부족하다 보니 포장 관련 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은 대부분 대기업으로 취업한다”고 말했다.

식품산업이 발전하면서 포장전문가에 대한 수요는 높아지는데 전문가 양성에 필요한 여건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학생들이 취업을 선택하다보니, 포장산업을 깊이 있게 연구할 인재가 없다고 박 회장은 하소연했다. 중소기업으로 취업하는 사례도 거의 없다. 박 회장은 “이런 이유로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관련 학과 증설과 포장산업 연구를 위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기관이 나서면 중소기업들의 포장 비용 부담을 줄여 줄 수 있다고 박 회장은 덧붙였다. 특히 수출용 포장재는 수출 국가에 맞게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부담이 된다.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익산의 국가식품클러스터 등에 정부가 운영하는 포장센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박 회장은 “품질 좋은 포장재를 공동으로 개발해 지원하면 기업들은 포장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며 “정부차원에서도 포장시스템을 통합 운영하게 되면 관련 산업 기술 역량을 키우는 계기가 될것”이라고 말했다.


포장재 수입 의존도 낮춰야

최근 식품업계 트렌드인 HMR은 어디에 어떻게 담는지가 관건이다. 편리성을 강조한 제품들이 인기를 끌면서,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는 제품의 포장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박 회장은 “HMR 분야에서 식품 포장산업의 발전 가능성은 높지만, 국내 포장업계는 포장재를 발굴하고 개발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HMR 제품의 포장 크기는 작지만, 포장 관련 기술이 집약된 고급 포장재를 사용한다. 라면 포장 등에 사용하는 파우치 소재는 현재 우리나라 기술 수준으로도 충분히 생산 가능하다. 그러나 제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고급 포장재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중국에서는 값싼 포장재를 수입하고, 상대적으로 기술 수준이 높은 일본 등에서 고급 포장재를 수입한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 포장산업 전체 규모가 65조원이라고 하는데 포장재 수입이 7억달러”라며 “국내 포장기술 수준은 대만의 약 85% 수준”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대만의 포장기술이 발전한 이유로 중소기업 간의 경쟁을 꼽았다. 우리나라에 비해 중소기업의 비중이 높은 대만은 서로 경쟁하며 포장 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기업 의존도가 높다. 대부분의 포장재 회사들이 대기업 계열사나 자회사다. 박 회장은 “대기업이라는 안정적인 납품처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포장재 개발에 투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식품업계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포장업계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포장재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새로운 식품에 적용할 수 있는 고급 포장재 개발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소비자의 소유욕, 위생안전성, 편리성, 친환경성 등을 갖춘 포장 제품이 많이 팔리는 시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비싸더라도 가치 있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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