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_ 이정수 대아청과 대표

“산 속에서는 나무만 보일 뿐 숲이 보이지 않습니다. 서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의 구성원들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는 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이들이 가락시장에서 일 한다는 자체에 보람을 느끼도록 하는 게 마지막 남은 꿈입니다.” 농산물도매유통업계에 발을 들인 지 35년차인 이정수 대아청과 대표의 말이다.

 

이정수 대표는 용산시장이 가락시장으로 이전해 현재의 모습이 될 때까지의 과정을 직접 경험해 온 한국농산물도매유통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런 그가 올해 한국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 가락시장지회 회장을 맡아 각종 현안에서 도매법인들의 입장을 대표하게 됐다.

 

도매법인과 대립중인 주체들과 적극적인 소통 추진

그는 가장 먼저 가락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주체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재 가락시장 내부 주체들은 시설현대화 사업, 거래제도 다변화, 물류 효율화, 정가·수의매매 활성화 등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중이다.

가락시장 시설현대화 사업은 이제 막 1단계 사업을 마쳤지만 임대유통인들의 입주 문제로 진통을 앓는 중이다. 이를 두고 도매권역 주체들은 시설현대화 사업 지연을 우려하며 청과직판 상인들의 입주를 촉구하는 중이지만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와 청과직판조합의 강대강 대치는 계속되고 있다.

이어지는 2단계 사업 역시 난항이 예상되기는 마찬가지다. 설계 단계부터 거래제도 다변화와 관련해 도매법인과 중도매인들 간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물류 효율화 문제에는 서울시공사, 도매법인, 하역노조 등이 뒤엉킨 상황이다. 정가·수의매매 활성화 역시 농림축산식품부가 목표 비율을 정한 후 그 수치를 맞추기 위한 무리수로 부작용이 꾸준히 포착되는 중이다.

무엇 하나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 대표는 어떻게 도매법인들의 입장을 모아 정리하고 대립중인 다른 주체들과 합의를 이끌어낼까? 의외로 가장 기본적인 답이 나왔다.

“가락시장의 구성원들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보다 소통에 능한 사람들입니다. 소통 없이 이뤄지는 거래가 있나요? 이해관계가 첨예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대립 일변도를 걷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 상인으로써의 특기인 소통으로 가락시장을 살려나가야 합니다.”

 

도매시장 이용자들에 대한 서비스 개선 필요

이 대표의 말에서는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이미 대형유통업체 바이어들을 비롯해 농산물 구매자들이 가락시장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그는 “가락시장의 역할을 제3섹터가 잠식하고 있다”고 경계감을 드러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이 대표는 “가락시장을 이용하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며 “가락시장의 고객은 농산물을 출하하는 농민, 가락시장에서 농산물을 조달해가는 구매자들”이라고 말했다. 그들에 대한 서비스를 개선해 가락시장을 떠난 출하주와 구매자들을 다시 끌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이 대표는 “일본의 도매법인들은 고정 출하주들과 장기적으로 거래를 이어가는 비중이 압도적”이라며 “우리 농민들이 한 도매법인과 고정 거래하지 않고 여러 도매법인을 떠도는 것도, 가락시장과 다른 도매시장에 번갈아가며 농산물을 출하하는 것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 것이 도매시장의 의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우선 도매법인 경매사들부터 산지에 대한 서비스의 질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최근 가락시장 내 도매법인들이 산지 물량 확보만을 위한 치킨게임을 벌인 데 대한 자기반성이다. 지난해에 채소 수집에 강점을 가진 동부팜청과, 한국청과는 과일 농가 유치에 열을 올렸고, 과일에 강점을 가진 서울청과, 중앙청과, 농협경제지주 가락농산물공판장은 채소 농가 유치에 혈안이 됐다.

물론 이 같은 경쟁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다. 이 대표는 “이미 도매법인 경매사들은 산지를 방문해 영농지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이지만 이것이 도매법인 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출장의 개념이어서는 곤란하다”며 “도매법인의 서비스로 산지가 성장해 고품질의 농산물이 생산되면 도매법인은 그에 합당한 가치를 받아주며 동반성장하겠다는 진심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중도매인들도 소비지에 대한 영업을 강화해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가락시장의 관리주체인 서울시공사에 대해서도 농민과 구매자의 회귀를 위해 함께 노력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 대표는 “일차적으로 수집‧분산의 주체들이 각자가 담당하고 있는 고객이 감동할만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면서도 “서울시공사도 가락시장 자체에 대한 홍보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정가‧수의매매 활성화 과제…부작용 개선해 경매제와 상호보완 해야

농민들이 경매제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 변동폭이 크기 때문이다. 적정 물량보다 조금만 공급이 초과해도 가격이 폭락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가격이 폭등한다. 때문에 그 대안으로 정부가 들고 나온 것이 정가‧수의매매이다. 이것은 경매제의 가격 변동폭을 완화하기 위해 수급이 아니라 농민과 농산물 구매자의 합의를 통해 가격을 결정하는 거래제도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정가‧수의매매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처음에는 농민과 중도매인 양쪽 모두 부정적 반응을 보일 것을 우려했지만 의외로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며 “정부에서 정한 목표치에는 미달했지만 지난해의 성과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고 자평한다.

물론 포착된 부작용에 대해 부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발생한 문제점들을 개선하면서 경매제와 동반성장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 대표는 “초기단계에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며 “각 도매법인별로 강점이 있는 품목을 중심으로 정가‧수의매매를 가락시장에 안착시킨 후 확산을 추진하면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당장 양적 지표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문제점들을 짚어가며 질적인 성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농민이나 중도매인, 도매법인 모두에게 정가‧수의매매를 활용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며 “그렇게 되면 제도의 확산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이미 경매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효과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가락시장은 대단한 가치를 지닌 곳

“아직 가락시장의 외형 자체는 성장하는 중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급격한 위축도 없을 것으로 보고요. 떠나는 이용자들에 대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락시장만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습니다.”

가락시장의 위상 하락에 대해 경고음이 나오고 있지만 이 대표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그는 “대형유통업체들이 산지 직거래 비중을 늘리고는 있지만 그들이 농가로부터 가져가는 물건은 한정적”이라며 “품위에 상관없이 모든 물건을 다 받아 처리해주는 건 도매시장만 할 수 있는 고유기능”이라고 자부심을 나타냈다.

대형유통업체의 산지 직거래에 대해 최근 산지에서도 불만이 늘어나고 있다. 최고품위의 농산물을 대형유통업체에 공급하고 차상위 물건을 도매시장에 보내면서 경락가격이 하락하는데 그것을 기준으로 공급가격을 결정하는 대형유통업체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몇몇 산지에서는 대형유통업체 직거래를 중단하고 주요 출하선을 도매시장으로 옮기는 문제에 대한 논의도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대표는 도매시장과 대형유통업체간 대결구도보다 농산물 유통의 효율성 측면으로 접근했다. 그는 “도매시장은 법적으로 농민이 출하한 농산물을 모두 소화해줘야 한다”며 “몇십년 동안 그 기능을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수행해 온 가락시장의 저력은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형유통업체 입장에서도 산지 직거래를 추진하는 것과 도매시장을 활용하는 것 사이에서 효율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한 개 대형유통업체가 모든 품목을 직거래하기 위해 산지를 개발하고 거점을 설치하는 게 그 기업 입장에서 정말 효율적인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마트의 영업이익률은 2011년 6.93%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하락했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4.07%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럼 가락시장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 대표는 “오히려 지금의 어려운 상황이 가락시장에 기회일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는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농산물 유통의 1번지는 가락시장”이라며 “소비지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가기 위해 산지도 변화해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준비가 부족하다. 그 간극이 메워질 동안 완충판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유통주체가 도매시장 말고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가락시장의 가치를 가락시장 구성원들이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현재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이 와중에 가락시장만큼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곳은 찾기 힘들다”고 단언한다. 1982년 농산물도매유통업계에 그는 연구자로 데뷔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난 후 아예 시장 안으로 들어와서 직접 농산물 유통을 수행했다. 그런 이 대표가 하는 말이기에 모두가 어렵다는 지금이 가락시장에 기회라는 말도, 누가 뭐래도 가락시장이 한국 농산물도매유통의 1번지라는 상투적 표현도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이정수 대아청과 대표는> 강원 원주시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를 졸업했다. 1983년 농산물도매유통업계에 연구자로 발을 들인 후 1989년 서울시장, 2000년 국무총리, 2006년 행정자치부장관, 2012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표창을 수상했다. 현재 대아청과 대표이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 중앙자문위원, 한국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Plus_  도매시장법인협회 가락시장지의 당면과제는?

물류 효율화‧시설 현대화 등 현안 산적

 

농산물도매유통업계의 베테랑 중 베테랑인 이정수 대아청과 대표가 올해부터 한국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 가락시장지회 회장을 맡는다. 하지만 축하를 받을 겨를이 없다. 당장 현안들이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물류 효율화다. 서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 내 물류 효율화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서는 과거부터 산지와 상인, 학자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하지만 단기적 처방과 구체적 실행 부재가 이어지는 실정이다.

이정수 회장은 “우선 파렛트 출하가 가능한 품목에 대해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중도매인, 도매법인 간 협의를 통해 물류기계화를 추진할 단초를 마련하겠다”며 “올해에는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가락시장 시설현대화 역시 이제 본선경기에 접어들었다. 올해부터는 도매권역을 현대화하는 2단계 사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1단계 사업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2단계 사업은 다르다”며 “몇십년 후를 내다보고 시설을 구축해 가락시장이 명품시장으로 발돋움할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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