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_ 김병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중도매인들이 어렵다는데 이건 도매시장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작게는 대금 결제 시스템 보완부터 크게는 농업‧유통업 전반의 질적 성장이 절실한 상황이에요. 현재 서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 내 유통주체들은 지엽적 문제로 갑론을박을 벌이는데 이보다는 큰 틀의 안목으로 시장 환경 변화에 대응할 방안 모색이 시급합니다.” 김병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식품유통연구부 선임연구위원의 말이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과 희망.

 

분산한 농산물의 대금정산 시스템 필요

가락시장 내 중도매인들을 괴롭히는 가장 직접적 요소인 매출채권 부도를 방지할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도매시장에서 출하자에게 대금을 정산하는 시스템은 법으로 안전성을 보장받고 있지만 중도매인들은 소비지 시장으로부터 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김병률 연구위원은 “중도매인이 분산한 농산물에 대한 대금 결제 시스템이 도입되지 못한 이유는 과거의 거래 관행 때문”이라며 “과거에는 ‘도부꾼’이라고 불리는 차량행상들과 무자료 거래가 성행했고 이 관행으로 지금도 서류 없는 외상거래들이 많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지난해부터 전자 세금계산서 발행이 의무화되는 등 거래 투명성이 많이 향상됐다. 시장 환경은 계속 투명성을 지향하고 있는데 유통인들의 거래행태는 과거 불투명한 관행에 머물러 있어 피해를 보는 것이다.

한국은 출하자가 도매시장에 농산물을 출하하면 대금을 익일에 받고 농산물을 경락받은 중도매인들은 10일 안에 대금을 정산해야 한다. 하지만 중도매인들에게 농산물을 공급받은 중소규모 거래처들이 대금을 결제하는 데는 기약이 없는 실정이다.

김 연구위원은 “현재 한국 농산물 도매유통에서 나타나는 대금 결제 흐름의 방향은 도매법인이 출하주에게 대금을 결제한 후 중도매인이 경락대금을 정산하고 그 이후 소비지 거래처가 중도매인에게 결제한다”며 “단계별로 끊어진 자금의 흐름을 거꾸로 돌려 연결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김 연구위원은 그 해결책을 일본 사례에서 찾는다. 일본의 농산물 중도매기업들은 자신이 공급한 농산물의 값을 거래처로부터 받은 후 도매법인에 정산하고, 그 돈으로 도매법인들은 출하자들에게 출하대금을 보낸다. 소비지로부터 출하자까지 대금의 흐름이 연결돼 있다. 김 연구위원은 “도매시장에서 농산물을 구매하는 구매자들도 신고‧등록의 과정을 거치게 해 소비지로 분산된 농산물의 대금 결제도 법적‧시스템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소비지 시장으로부터의 대금결제를 보장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중도매인들의 규모가 지금처럼 영세해서는 힘들다. 가락시장만 해도 중도매인 숫자가 1000명이 넘는데 이들이 거래하는 거래처들 각각을 시스템에 입력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중도매인도 규모화 추진해야

이에 김 연구위원은 중도매인들도 규모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는 “대금 결제 시스템은 차치하고라도 지금과 같이 영세한 규모를 유지해서는 소비지의 거래처를 모두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전초는 대형유통업체들로부터 나타났다. 대형마트들은 이미 산지 바이어 조직을 따로 두고 있거나 신선식품 물류센터를 구축했고 도매시장 의존도를 크게 낮추었다. 김 연구위원은 “최근에는 중도매인들의 주력 매출처인 중소형마트들도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전통시장 상인들도 시장단위로 공동물류를 추진하는 상황”이라며 “이들의 목적은 산지 직거래를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도매시장을 거쳐 소비지로 나가는 농산물의 양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도매법인들이 산지에서 농산물을 수집해 와도 중도매인들이 제대로 분산시키지 못해 병목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도매법인들의 입장에서는 현재 활성화가 추진되고 있는 정가‧수의매매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도매인들이 영세한 규모 때문에 농산물을 제대로 분산하지 못하고 있으니 규모의 경제를 이룬 도매법인들이 직접 소비지 시장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가락시장 중도매인 한 사람의 평균 연매출은 100억원대이다. 개인 사업자 기준으로 영세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김 연구위원은 “그 정도 규모로 한 개 대형마트 전점이 요구하는 물량을 감당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이어 “일본의 중도매기업들은 직원만 몇백명”이라며 “지금이라도 중도매인들끼리 인수‧합병(M&A)으로 대형 구매자에 단독으로 대응할 수 있게 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가락시장 현장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계속해서 업황이 나빠지는데 5년 후에도 가락시장에 남아있겠느냐는 질문에 한 중도매인은 “직원들을 내보내고 우량 거래처 위주로 내가 직접 몸으로 뛰면서 버티겠다”고 말했다. 규모화는 요원해보이고 도매시장에서 희망을 찾기도 힘들어 보인다.

 

산지 규모화도 미비한 상황, 도매시장이 완충판이 돼야

그럼에도 김 연구위원이 농산물 도매유통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지 출하조직의 규모화가 미흡한 상황에서 소비지 대형유통업체와 직거래로 받을 수 있는 충격의 완충판 역할을 도매시장이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산지 출하조직들이 규모화되고 나면 소비지 대형유통업체들은 도매시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가 되면 출하조직들은 소비지 유통업체와의 정보 비대칭이 해소되고 협상력은 향상됩니다. 그럼 소비지 유통업체들은 산지 직거래에 피로감을 느끼게 될 겁니다.”

출하자 입장에서 도매시장의 장점은 출하한 농산물은 무조건 소화해준다는 것이다. 대형유통업체들에게서는 이를 기대할 수 없다. 김 연구위원은 “대형유통업체와 직거래하고 있는 산지 출하조직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가격에 대규모 물량을 소진할 수 있어 당장은 만족하고 있지만 힘의 균형이 쏠려있기 때문에 점점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며 “이미 감귤 출하조직들에서는 주력 출하선을 다시 도매시장으로 바꾸는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소비지 유통업체 입장에서 공급선을 직거래에서 도매시장으로 바꾸면 추가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뛰어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소비지 유통업체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게 김 연구위원의 생각이다. 그는 “최근 소비자들은 농산물도 가격보다는 가치를 우위에 두고 소비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에 가장 잘 대응하고 있는 업태가 백화점”이라며 “이전처럼 농산물 유통을 수급에 따른 가격적 측면에서만 고민한다면 우리 농산물은 중국산 농산물과 직접적 경쟁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농산물에 가치를 부여해 소비자들이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만드는 게 유통업체들의 사명이라는 김 연구위원. 침체된 도매시장을 활성화할 대안을 찾으면서 한국 농산물의 생산부터 소비까지를 희망적 어조로 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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