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가락시장 중도매인

2015년 12월 21일 월요일 오전 10시 서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 일요일이던 전날이 도매시장 휴무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건이 부족해야 할 시간이지만 중도매인 점포 앞에는 재고 물량이 쌓여있었다. 재고를 소진하지 못한 채 그날 장사를 접고 점포 문을 닫은 중도매인도 상당수였다.

 

 

서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이 심상찮다. 지난해에는 도매법인별 대형 중도매인의 부도 소식이 잇따랐다. 특히 한 백화점 과일벤더였던 중도매인의 부도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대형유통업체, 그중 백화점을 거래처로 갖고 있으면 인접 중도매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대형유통업체와 거래한다는 것만으로는 안정적 영업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산지 가격과 소비자 가격의 연결고리 해체

농산물 유통시장 자체에서 유통 마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이후 분기별 농가판매가격지수는 신선식품 소비자물가지수를 지속적으로 웃돌았다. 19개 분기 중 채소와 과실 모두 2개 분기만 농가판매가격지수보다 소비자물가지수가 근소하게 높았다.

현재 통계청의 통계자료는 2010년 수준을 100으로 상정해 해당 기간에 물가가 기준년보다 얼마나 차이나는 지를 나타낸다. 농가판매가격지수와 소비자물가지수의 구성항목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추세 파악은 가능하다.












소비자물가와 농가판매가격의 차이가 유통 마진인데 그 폭이 2010년보다 꾸준히 줄어들었다. 2010년 1분기~2015년 3분기까지 채소 농가판매가격지수는 86~147.3을 기록했지만 신선채소 소비자물가지수는 79.05~119.88이다. 농가가 생산한 농산물 중 파품의 가격까지 농가판매가격지수에 포함된 점을 감안하면 두 지수의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과실은 더 심각하다. 같은 기간 과실 농가판매가격지수와 신선과실 소비자물가지수는 각각 93.3~215, 89.6~128.97이다.

통계 수치상으로는 이 기간동안 농가들은 행복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최근 더바이어와 인터뷰한 대부분의 농가들은 “농산물 가격이 조금만 꿈틀대면 장바구니 물가 운운하며 물가잡기에 나서는 정부 정책 때문에 농자재 가격이 10배 넘게 오르는 동안 농산물 가격 상승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입을 모았다.

통계치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유통인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농산물을 분산시키면서 취할 수 있는 단위 당 마진은 그대로지만 각종 시설투자비용, 인건비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락시장에서 버섯을 전문으로 유통하는 최경진 푸른상주농산 대표는 “버섯 한 박스에 붙는 마진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500~1000원”이라며 “그 동안 지출해야 할 경비는 크게 올랐다”고 토로했다. 단적인 예로 현대자동차가 판매하는 1톤 트럭의 가격은 2007년식이 984만~1574만원이었지만 2015년식은 1430만~1949만원이다.

인건비도 매년 오른다. 밤과 낮이 바뀌고 무거운 농산물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인력을 구하기도 힘들고 경력이 쌓인 직원을 영입하기 위한 중도매인 간 경쟁으로 인건비에 웃돈까지 붙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가락시장의 중도매인은 “우리는 무거운 농산물을 취급해 인건비 수준이 높은 편이다. 농산물 유통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신입직원을 기준으로 월 230~250만원이 지급된다”며 “그나마도 꾸준히 근무하면 좋겠지만 경력이 쌓일 동안 버티면 다른 중도매인에게 영입 제의가 꾸준히 들어오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대형 거래처를 잡기 위한 시설 투자 비용도 중도매인을 옥죄고 있다. 정상균 한국농산물중도매인조합연합회 서울지회장은 “대규모 거래처들은 기본적으로 식품안전관리(HACCP)인증을 획득한 작업장을 요구한다”며 “이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많게는 20억원까지 비용이 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가락시장 관계자 역시 “2000년대 후반부터 대형 거래처를 중심으로 시장 외부에 HACCP 인증을 받은 작업장을 개설하라는 거래조건으로 붙는 게 유행했다”며 “하지만 비용을 들여 시설을 구축한다고 납품가격이 충분히 올라가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대규모 거래처는 산지직거래, 중소형 거래처는 이익폭 갈수록 줄어

마진은 그대로인데 각종 비용이 오른다면 답은 취급 물량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대형유통업체들은 도매시장을 통하기보다 산지 직거래에 더 몰두하는 모습이다. 중소형 거래처를 늘려야 하는데 거래량이 늘어난다고 이익이 함께 증가하는 구조는 아니다. 그나마도 직거래로 빠진 대형유통업체의 매출을 메꾸기 위한 중도매인 간 경쟁은 치열한 상황이다.

우선 농산물 가격 변동에 따라 기존 거래처와 거래에서 마진을 보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최경진 대표는 “느타리버섯 한 박스에 500원 정도를 붙여 파는 게 일반적이지만 거래처 공급가격이 6000원을 넘어가면 소비자들의 구매 저항선에 걸린다”며 “만약 경락가격이 5500원 이상이면 500원의 마진도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가격이 낮을 때 많은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가시락장의 경락가격이 실시간으로 공개되기 때문에 큰 폭의 마진을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 지회장의 주력 품목인 고추류는 올해 내내 시세가 좋지 못했다. 때문에 영업력이 가락시장에서 상위 15%에 해당한다던 그는 “올해 매출이 한창 때에 비해 4분의1 토막이 났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올해 개인이 운영하는 중소형마트 업황이 좋아 신규 거래처는 늘어났지만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정상균 지회장은 “거래처의 90%가 동네에 있는 중소형마트인데 매출채권 부도율이 높다”며 “물건은 많이 파는데 이익을 못 남긴다”고 말했다. 앞의 중도매인 역시 “중소형마트, 외식업체, 전송거래 등 고른 매출 비중을 갖고 있었는데 올해는 중소형마트의 매출 비중이 확대됐지만 매출채권 부도 문제를 감안하면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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