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번복 vs 악의적 남용 “누구 책임인가?”

서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경락 후 재경매를 악용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경매 중 참가자의 실수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당사자의 판단 착오에도 습관적으로, 또는 이해관계에 따라 악의적 으로 재경매를 요구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경매 요구 사례
A출하주의 사과를 박스당 5만원에 낙찰 받은 B중도매인은 낙찰 받은 물건을 점검하 던 중 박스 상단의 품위와 하단의 품위가 현저히 차이나는, 속칭 ‘속박이’를 발견했다. 사과 경매가 끝나갈 무렵 B중도매인은 C경매사에게 재경매를 요구하면서 고성이 오 갔다. C경매사가 B중도매인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재경매가 이뤄졌고 가격은 4만원에 도 미치지 못했다.
B중도매인과 C경매인 간 고성이 오가는 사이 A출하주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C경매 사가 5만원, 인접법인의 D경매사가 4만5000원에 시세를 형성시켰다는 사실을 알게됐 다. A출하주는 D경매사에게 전화를 걸어 “가격이 너무 낮은 게 아니냐”며 재경매를 요 구했다. 재경매가 진행되지만 이미 필요 물량을 모두 확보한 중도매인들은 추가물량 에 대해 낮은 가격을 제시하면서 역시 4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이 형성됐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가격이 형성돼 A출하주가 이탈할 것을 우려한 D경매 사는 경매에 참가한 중도매인들에게 “상식적 가격인 4만5000원 정도는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때마침 경매 과정을 점검하던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직원이 이 상황을 인 지하고 강매 여부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결국 D경매사는 업무정지 15일의 징계를 받 았다.

속박이, 응찰기 실수, 낙찰가격 불만시 요구
대개 재경매는 물건에 이상이 있을 경우 이뤄진다.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속칭 ‘속박이.’ 가락시장에 출하된 농산물은 대부분 박스포장 상태로 경매가 진행되는 데 위에 담긴 농산물과 아래쪽 농산물의 품위가 서로 다를 때가 있다. 이런 경우 재경매 요구가 이뤄진다.
경매과정에서 중도매인이 응찰기 주파수를 잘못 설정하거나 실수로 가격을 잘 못 입력하는 경우도 재경매 요구에 수용되는 사유다.
또 출하주가 단가 때문에 재경매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가락시장의 한 관리 자급 경매사는 “최근 가락시장으로 농산물을 출하하는 출하주들은 분산출하를 하기 때문에 낙찰 후 바로 법인별 가격비교가 가능하다”며 “인접 법인보다 가격 이 현저히 낮으면 당연히 문제를 제기한다”고 전했다. 가락시장에서는 이런 경우 를 ‘불락’이라고 표현한다.

감정싸움에 악용… 습관화 우려
문제는 농산물에 문제가 없는데 이해관계 또는 감정에 의해 재경매가 요구되 는 경우다. 가락시장에서는 이를 ‘오줌을 싼다’는 은어로 표현한다. 경매사들은 “물건에 문제가 없는데도 중도매인의 판단 착오로 단가를 높게 책정한 것을 되돌 리기 위해 습관적으로 재경매를 요구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출하주의 분산출하로 중도매인도 같은 물건에 대해 인접 도매법인 소속 중도 매인과 낙찰가격 비교가 가능하다. 현저히 높은 가격에 낙찰 받는 경우 농산물에 문제가 없음에도 트집을 잡아 몽니 부리기에 돌입한다는 것이다.
출하주나 경매사를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서 악용되는 사례도 간혹 발생한다. 중도매인이 거래과정에서 쌓인 앙금 때문에 의도적으로 해당 농산물의 가격을 하락시키기 위해 재경매를 요구하기도 한다. 갖가지 이유로 중도매인과 경매사 는 앙금이 쌓일 일이 많은데 특정 출하주의 농산물 가격이 낮게 형성되면 경매사 나 출하주 모두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한 가락시장 관계자는 “대부분의 중도매인은 중량 미달, 속박이에 해당하는 물 건을 받더라도 곧장 재경매를 요구하는 게 쉽지 않다”며 “이를 발견하는 시점도 이미 물건이 경매장에서 중도매인 점포로 옮겨진 후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한다. 물건이 중도매인 점포로 옮겨진 후에는 재경매 자체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손해 를 본 중도매인이 나중에 해당 출하주에게 ‘복수’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중도매인 역시 “습관적으로 재경매를 요구하는 사례가 없지는 않다”며 “거래관계에서 도매법인보다 약자인 중도매인이 경매사나 출하주에게 대항하는 한 가지 방식”이라고도 전했다.

서울시공사, 재경매 상습 중도매인 시정조치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이 하 서울시공사)는 ‘재경매 상 습 요구자’를 선정, 4~7월 시 정지시 및 교육을 진행했으며 8월부터 2차 이상 위반자에 대한 영업정지 등 행정조치를 할 방침이다.
재경매 상습 요구자는 요구 한 재경매 건수 중 2건을 뺀 숫자가 그 중도매인의 전체 경락 건수의 2%를 초과한 자를 대상으로 했다. 특수 품목 중도매인의 경우 일일 경락 건수가 적기 때문에 재경매 요구건수에서 2건 을 제외했다.
재경매 상습 요구자로 지목된 중도매인은 15명인데 특수품목 중도매인 4명, 과일 중도매인 11명. 소속 법인별로는 중앙청과 5명, 농협가락농산물공판장 4명, 서울청과 2명이다. 특수품목 중도매인은 모두 대아청과 소속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공사가 뒤늦게 규제에 나섰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 다. 한 도매법인 관계자는 “상습적으로 재경매를 요구하는 중도매인과 출하주에 대해서 각각 판매장려금과 출하장려금을 일부 삭감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 다”면서도 “현실적으로 재경매 요구를 억제하는 데는 역부족”이라고 토로했다. 그간 서울시공사가 재경매 결과인 판매원표 정정에 대해 도매법인은 규제하면서 도 중도매인들의 일탈을 눈감아줬다는 불평이다. 서울시공사는 판매원표 정정 건수를 도매법인 평가 시 감점 등으로 반영했다.
이에 대해 윤영돈 서울시공사 농산팀 과장은 “기본적으로 악의적인 재경매 요 구에 응하지 않고 저지시키는 게 경매사가 해야 할 일”이라며 “중도매인과의 마 찰을 피하기 위해 유야무야 재경매 요구를 받아줬기 때문에 문제가 곪아온 것”이 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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