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주 시장 판도 바꾸었다

‘순하리’ 열풍이 의외로 거세다. 거리의 술집과 편의점들이 ‘순하리 있습니다’라는 말로 고객을 끌고 있다. 소주계의 ‘허니버터칩’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출시 두 달 만에 1000만병 판매 기록을 세우며 저도주 시장을 빠르게 키워가고 있는 롯데주류의 전략 포인트.



롯데주류BG의 ‘순하리 처음처럼’는 유자향과 유자 농축액을 첨가한 과일소주(리큐르)다. 지난 3월 론칭 후 40일 만에 150만병이 팔렸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 출시 후 두 달 만에 1000만병 판매 기록을 세웠다. ‘처음처럼’이 월 4500만~5000만병이 판매되는 것을 고려할 때 매우 이례적인 판매량이다.

조판기 롯데주류BG 상품개발팀 팀장은 “우리도 예상하지 못한 인기”라고 설명했다.

사실 순하리의 인기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정식 판매 전 편의점 점주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발표회에서 첫 선을 보였을 때 호응이 높았기 때문이다. 리서치 결과 점주들의 85~95%가 ‘발주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조판기 팀장은 “출시 이후 일부 편의점에서는 순하리를 사려는 고객에게 번호표를 나눠주는 진풍경이 벌어질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3개 공장으로도 물량 부족… 청주공장 증설

◀순하리 생산 라인. 현재 전국 3곳의 공장에서 월 1000만병 정도가 생산되고 있다.

또 허니버터칩처럼 일부러 순하리 생산량을 제한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조 팀장은 “일부에서 순하리 생산량을 일부러 줄인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이야기”라며 “우리도 순하리 맛보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이런 말이 나오게 된 데는 ‘예상치 못한 인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 팔렸다는 것이다.

현재 순하리는 강원 강릉, 전북 군산, 경북 경산 등 3개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각 공장들은 생산노조와의 협의를 통해 휴일과 주말까지 반납하고 2교대로 쉬지 않고 가동 중이다.

특히 군산공장은 순하리 생산량의 50%를 차지한다. 조 팀장은 “현재 청주공장을 증설 중”이라며 “연말쯤에는 가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전까지는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싶어도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개발만 2년… 유자와 술 맛 조율

순하리 개발에는 꼬박 2년이 걸렸다. 조 팀장은 2013년부터 시장조사와 소비자 리서치를 진행했으며 그 해 10월부터 본격 개발에 돌입했다. 조 팀장은 “개발 초기에는 친구들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맛에 관한 인터뷰를 조금씩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과일 맛을 결정하는 과정도 길었다. 아세로라(acerola), 망고 등 온갖 과일이 후보에 올랐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과일 생산 현황부터 과실주 시장까지 모두 조사 대상이었다. 유자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그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감귤류(Citrus)가 유행이기도 하고 한국적인 맛과 함께 술하고 섞였을 때의 맛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유자로 결정한 후 ‘은은한 향에 상큼한 맛’을 조율하기 위한 소비자 리서치도 긴 시간 진행됐다. 순하리에는 국산 유자 농축액이 0.033% 들어있다. 그는 “미투제품은 기존 상품의 향과 맛을 최대한 비슷하게 내면 되기 때문에 개발이 쉽지만 첫 제품은 소비자가 어떤 향과 맛을 좋아하는지 술 맛과의 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순하리의 전략 포인트 셋.

 

전략 ➊여성 위한 술

순하리의 주 타깃은 20~30대 여성과 이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소비자다.

조 팀장은 “리서치 결과 한국에서는 술을 마실 때 여성을 배려하는 문화가 있어 술 선택은 주로 여성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비율로 봤을 때에는 술자리에서 술을 남자끼리 마시는 경우 40%, 여자가 끼어있는 경우가 50%이상, 여자끼리는 10% 안쪽이라는 것이다. 최소 60%이상의 소비자에게 ‘여성을 위한 술’로 어필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전략이 깔려 있는 셈이다.

 

전략 ➋부산·영남권 공략 상품

순하리는 부산·영남 지역을 공략하고자 만든 제품이다. 부산 지역은 무학의 ‘좋은데이’와 대선주조의 ‘C1’등이 이미 소주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좋은데이의 부산 지역 점유율은 85~90%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처음처럼’으로는 시장 공략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도수를 낮춘 제품인 순하리로 접근했다.

여기에는 지역적 특성도 고려됐다. 조 팀장은 “영남 지역은 기후가 따뜻하고 여름이 긴 지역”이라며 “비슷한 기후의 동남아시아 술 트렌드를 보면 저도주 인기가 높다”고 밝혔다. 실제로 영남 지역은 소주의 저도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청하나 설중매 등 저도주 제품을 냈을 때 반향이 가장 빨라 테스트 마켓으로도 적절하다.

 

전략 ➌신개념 14도 과일소주로 접근

순하리의 도수는 14도다. 기존에 없던 저도주 상품이다. 조 팀장은 “순하리는 소주와 맥주, 청하와는 다른 영역에서 소비자 니즈를 채우는 제품”며 “단순히 도수로 포지셔닝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순하리가 출시됐을 때 비슷한 도수대인 청하(13도)가 별 타격이 없었던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저도주 시장은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초·중반 레몬소주, 체리소주 등 과일 소주가 반짝 판매됐지만 기존 소주보다 50% 이상 가격이 높았다. 여기에 기술력 부족으로 인해 상품의 질도 다소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주세 문제 등이 겹쳐 이후 시장에서 저도수 과일소주들이 사라졌다. 손꼽히는 저도주는 청하, 백세주 정도다.

하지만 올해 순하리가 등장하면서 시장이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순하리에 이어 무학의 ‘좋은데이 컬러시리즈’나 하이트진로의 ‘자몽에이슬’, 금복주의 ‘상콤달콤 순한참’ 등 여러 소주 제조 기업들이 저도주 과일소주 제품을 출시하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에 대해 조 팀장은 “경쟁사들의 미투제품 출시를 환영한다”며 “기존 시장에 없던 도수의 술이기 때문에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Comment_조판기 롯데주류BG 상품개발팀 팀장

“저도주는 전 세계적 트렌드… 즐기는 술에 초점”


◀조판기 롯데주류BG 상품개발팀 팀장.

조판기 롯데주류BG 상품개발팀 팀장은 롯데주류BG의 ‘순하리 처음처럼’의 개발을 처음부터 진두지휘했다. 그는 순하리의 포인트 중 하나인 저도주는 세계적인 트렌드라고 강조한다. ‘먹고 쓰러지는’ 술이 아니라 ‘즐기는’ 술로 변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과일주 플레이버 보드카나 위스키 등이 전 세계적으로 대세입니다. 미국의 플레이버(Flavor) 보드카는 매년 30%씩 성장하고 있으며 일본 시장은 알티디(RTD, Ready-to-drink) 카테고리가 주류시장의 10%를 차지합니다.”

특히 일본 소비자들은 ‘미즈와리(みずわり, 술에 물을 섞어 마시는 음용법)’를 할 때 20년 전엔 10도 정도로 희석했지만 최근에는 5~7도대로 맞춰 마시는 추세다. 이와 관련 그는 순하리 음용방법으로 300~400㎖ 잔에 얼음을 반 정도 채우고 순하리 반병을 부어 10도 정도로 맞춰 마시는 것을 제안한다.

“순하리 개발 초기에는 바(Bar)나 집에서 즐기는 홈바 문화가 확산되는 것에 착안해 RTD와 믹싱(Mixing)사이에서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믹싱주로 만들어 도수가 올라가면 소비시장의 폭이 줄어든다고 판단해 더 손쉽게 소비하는 RTD(리큐르) 형태로 결정했습니다.”

저도수 과일소주는 이렇게 탄생한 셈이다. 그는 순하리의 새로운 맛을 늘리기 보다는 기존 제품의 시장 안착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생산 물량 부족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일본 시장에서는 한국 소주가 현지인들의 마켓에서 소비되지만 아직 미국과 중국시장에서는 현지 한인들을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순하리로 해외 현지 시장을 공략해보는 게 또 다른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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