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약주들이 몰려온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1960~1980년대 ‘역사는 밤에 이뤄진다’는 요정문화에 빠지지 않았던 게 약주다. 한 약주제조자는 이 시기를 “약주 전성시대였다”고 회상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소주와 맥주에 밀려 약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우수한 약주들이 도약을 준비 중이다. 2013년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 약주부문 수상 브랜드 4곳은 각자 철학을 바탕으로 약주문화 활성화에 노력하고 있다.

 

* 약주 부문 시상내역

대상

황진이

(농)참본

전라북도 남원시 시묘길 122

최우수상

김포예주

김포양조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군하리 384-2

우수상

청세주

병영주조장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하멜로 507

장려상

백련 맑은술

신평양조장

충청남도 당진군 신평면 금천리 350-1

 

 

 

대상>>참본 황진이

남원 붉은 빛 ‘황진이’가 떴다

 

제조철학_ 좋은 재료와 꾸준한 연구

상품특징_오미자를 활용한 색과 산미

맛 초점_ 부드럽고 청량함

소비타깃_ 20~30대 여성

마케팅방향_한류 콘텐츠에 스토리 더한다

 

황진이는 남원에서 2대째 40년을 이어온 양조장 ‘참본’에서 만들어진 술이다. 참본은 2010~2011년 복분자를 이용한 술 ‘주몽’으로 우리술품평회에서 연속으로 수상했으며 2012년에는 황진이로 약주 부문 최우수상, 2013년에는 대상을 수상했다. 연속된 수상 기록은 참본의 상품력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화려한 수상기록만큼이나 고운 빛깔을 자랑하는 황진이를 만났다.

 

오미자 더해 색과 맛 모두 잡았다

황진이는 쌀과 누룩을 정제시켜 발효한 후 오미자 즙을 넣고 숙성 과정을 거쳐 만든다. 오미자를 이용하면서 황진이의 특징인 붉은 색상, 오미자의 오미 중 가장 두드러지는 ‘산미’를 이용해 약주 특유의 묵은내도 잡는 효과를 냈다.

양석호 참본 부대표는 “황진이에 사용된 지리산 자락의 오미자는 문경은 물론 남원‧장수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재배되고 있는 작물”이라며 이를 활용한 술을 개발, 오미자 즙을 첨가해 약주에 색과 맛에서도 과실주의 성격까지 담았다고 밝혔다. 양석호 부대표는 “오미자는 많은 전통주를 빚는 이들이 오미자 술을 만들기에 아주 좋은 재료로 본다”고 강조했다.

 

한류 콘텐츠 적극 활용

1994년 태어난 ‘오미자술’은 2008년 KBS 드라마 ‘황진이’의 방영을 계기로 라이센스를 얻어 황진이로 이름을 바꿨다. 한류로 대변되는 드라마 콘텐츠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함께 생산되고 있는 복분자주인 ‘주몽’도 동명의 드라마에서 땄다.

드라마로 대표되는 한류 콘텐츠를 이용해 술에 스토리를 입힌 것이다. 상품에 가장 중요한 스토리텔링을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활용했다. 양 부대표는 “남원 지역 절개의 상징인 ‘춘향이’로 이름을 지으려다 ‘술’에 더 어울리는 ‘황진이’로 이름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여성 위한 젊은 술

황진이의 주 타깃은 젊은 여성이다. 부드럽고 청량감이 풍부한 맛을 무기로 여성들에게 다가가겠다는 전략이다. 숙성은 30일 정도를 보관해 신선한 약주를 만든다. 그는 “소비자들이 많은 술들이 장기숙성을 하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좋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술에 따라 인식을 달리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양석호 부대표는 “약주는 사케와 비슷한 제조과정을 갖고 있지만 사케처럼 젊은 층의 고객들이 선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약주는 충분히 젊은 층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술”이라고 덧붙였다. 충분히 사케와도 겨뤄볼 만 한 잠재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젊은’ 술을 만드는 참본의 행보에 기대가 된다.

◀양선기 참본 부대표. 



 

*황진이는

쌀과 오미자를 활용해 술을 만들고 30일 가량 숙성시킨 약주다. 지리산에서 내려오던 오미자주를 새롭게 만들어냈다. 오미자를 넣어 나온 붉은 색상과 부드럽고 청량한 맛이 특징이다. 도수는 13도.

 

 

최우수상>> 김포양조 김포예주 예(禮)

한국 대표술, 와인에 도전장

 

제조철학_ ‘금’ 같이 소중하게

상품 특징_ 전분가를 높인 원료배합

맛 초점_ 달콤하고 상큼한 맛

소비 타깃_ 약주 시대를 기억하는 와인 소비층

마케팅 방향_ 와인 맛이 나는 약주

 

2013년 우리술품평회 약주부문 최우수상은 김포양조의 ‘김포예주 예(禮)’가 차지했다. 김포예주 예는 쌀만을 원재료로 사용한 약주와 달리 전분가를 높인 원재료 배합으로 풍부한 맛이 특징이다.

 

원재료 배합과 숙성으로 ‘달큼한 맛’ 완성

김포예주 예는 2012년 우리술품평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김포예주의 프리미엄 제품이다. 단맛과 산미가 결합한 맛을 두고 최형만 김포양조 대표는 ‘달큼한 맛’이라고 표현했다. 달콤하고 상큼한 감칠맛이라는 뜻이다. 이 맛을 앞세워 한국 주류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와인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다.

맛의 비밀은 원재료 배합과 숙성기간에 있다. 쌀만을 사용하지 않고 밀 등 다양한 원재료를 적절한 비율로 배합해 풍부한 맛을 내는 것이다. 쌀의 함량을 줄인 것은 원재료 값 부담 때문이 아니라 부족한 전분가를 높이기 위함이다. 최형만 대표는 “술의 원료로서 쌀은 도정으로 인해 전분가가 부족하다”며 “밀 등의 곡물류로 도정미에 부족한 전분가를 보충해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술맛을 보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적절한 온도에서 20일 가량 숙성하게 되면 단맛과 산미가 한꺼번에 나타난다. 이 때 산미가 더 강하기 때문에 이를 억제하기 위해 미량의 감미료를 사용한다. 발효기간을 더 길게 하면 단맛을 보충할 수 있지만 효율성을 택한 것이다. 최 대표는 “발효기간을 30일 이상으로 가져가면 술을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며 “생산성을 고려한 최적점으로 택한 것이 적은 양의 감미료다”고 밝혔다.

 

한국 대표 양조장, 꾸준한 R&D로 부활을 꿈꾸다

◀최형만 김포양조 대표.

김포약주는 구한말부터 제조되기 시작했다. 최 대표의 부친인 최성한 김포양조 회장이 1972년 김포약주를 만들던 양조장을 인수해 ‘김포양조’로 사명을 바꿨다. 이후 시설을 현대화해 품질을 균일화하고 생산역량을 향상시켰다. 1980년대까지 김포양조는 한국 약주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장을 잠식한 서양술에 전통주들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서양 문화를 무조건 선진화된 것으로 인식하던 개발시대의 어두운 단면인 것이다. 최 대표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의 고급주류문화는 요정에서 먹던 약주에서 위스키로, 저가 주류시장은 막걸리에서 맥주로 빠르게 전환됐다”고 회상했다.

김포양조는 시장을 서양 술에 내준 이후에도 연구개발(R&D)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최 대표는 “선친과 나 2대에 걸친 R&D로 축적된 약주 레시피는 100개가 넘는다”고 밝혔다. 우리 전통술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지금 김포양조 경영주 2대에 걸친 노력의 결실을 기대해본다.

 

* 김포예주 예(禮)는

쌀과 밀 등 3가지 곡물의 배합해 발효시켜 만든 술이다. 쌀만을 원료로 만든 약주에 비해 감칠맛이 느껴지는 뒷맛이 특징이다. 알코올 도수는 13도이며 700㎖ 한 병의 가격은 2만5000원.

 

 

우수상>> 병영주조 청세주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만들었다

 

제조 철학_ 정직한 마음으로 만든다

상품 특징_ 국내산 햅쌀에 한약재를 첨가한 약주

맛 초점_ 부드럽고 신선한 맛

소비 타깃_ 지역 내 차례주

마케팅 방향_ 건전한 약주문화 활성화

 

병영주조의 ‘청세주’는 막걸리가 주력인 병영주조가 이전까지 지역 소비자들에게 알음알음 입소문으로 판매하던 약주를 상품화한 것이다.

 

100% 국내산 햅쌀만 사용

청세주에 사용되는 쌀은 100% 국내산 햅쌀이다. 이것은 병영주조의 철칙이다. 때문에 18도라는 비교적 높은 알코올 도수에도 부드러운 목넘김과 신선한 맛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김견식 병영주조 대표는 “묵은 쌀을 이용해 술을 만들면 신선한 맛을 낼 수 없다”며 “묵은 쌀과 햅쌀로 밥을 지었을 때의 차이가 술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신선한 쌀에 구기자, 오가피 등 한약재를 첨가해 약주라는 상품에 충실했다. 병영주조는 오디와 복분자를 침출, 첨가한 ‘병영설성사또’로 2012년 우리술품평회에서 일반증류주 부문 대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첨가기술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청세주는 김견식 대표의 의지로 출시된 술이다. 그는 “해야 돼서 했다”고 표현한다. 제품의 시장성이나 예상 매출 등 계산기를 두들겨보지 않고 출시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백세주가 출시돼 성장하면서 회복될 줄 알았던 약주시장이 다시 위축되는 것을 보며 청세주를 출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시장성보다는 당위성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주도문화가 변해야 약주 성장 가능

◀김견식 병영주조 대표.

약주시장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주도문화가 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대표도 경제발전과 함께 소주와 맥주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약주문화가 쇠락의 길을 걸었다는 데는 다른 약주 제조자들과 생각이 같았다. 그는 “소주와 맥주가 뜨면서 일명 ‘부어라 마셔라’ 문화가 생겼다”며 “맛을 음미하면서 먹는 약주는 폭음을 하면서 취하고자 하는 주도문화와 어울릴 수 없었던 것”이라는 의견을 나타냈다.

일본의 사케 문화와 대비된다. 김 대표는 “일본에서 사케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모여서 많은 양을 마시는 술이 아니다”며 “따뜻한 차를 마시듯 휴식을 취하면서 데워먹는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사케 문화는 꾸준히 발전해 온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약주문화가 다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취하는 게 아니라 음미하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문화가 퍼져야 한다는 의견이다. 물론 이는 급하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 대표는 “술 자체를 팔기 위한 대대적 마케팅보다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소비자들에게 약주를 마시는 방법을 전하고 있다”며 “작은 걸음부터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에 이 같은 생각은 너무 순진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청세주의 철학처럼 구김이 없는 어린아이의 관점에서 찾은 답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 청세주는

국내산 햅쌀을 20~30일 간 발효하고 구기자, 오가피 등 한약재를 첨가해 만들었다. 18도라는 다소 높은 도수에도 부드러운 목넘김과 신선한 맛이 특징. 가격은 375㎖ 1병에 3000원이다.

 



 

장려상>>신평양조장 백련 맑은술

마시기 편한 약주, 젊은 층과 교감

 

제조철학_ 전통의 승계와 재해석

상품특징_ 연잎을 활용한 은은한 향

맛 초점_ 부드러운 첫 맛에 임팩트 있는 뒷맛

소비타깃_ 20~30대 젊은 층

마케팅방향_ 가볍게 먹기 편한 약주

 

충남 당진의 신평양조장은 1933년 설립된 양조장이다. 이곳에서 연잎을 이용, 사찰의 곡주를 재해석해 만들어낸 백련 막걸리는 2012년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에서 살균막걸리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올해는 백련 맑은술로 약주 부문 장려상을 수상했다.

 

‘차도녀’같은 약주

백련 맑은술은 당진에서 생산되는 해나루 쌀과 백련 잎을 가공‧이용해 만들어지는 약주다. 연잎을 이용해 은은한 향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첫 맛은 부드럽게 넘어가지만 목에서 넘어갈 때 포인트가 있다. 김동교 신평양조장 부사장은 “백련 맑은술은 부드럽기도 하지만 성격 있는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같은 술”이라고 표현했다.

제조 과정은 백련 막걸리와 같이 “사찰에서 연잎을 이용해 만들던 곡차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했다”고 밝혔다. 제조과정은 탁주와 비슷하지만 조금 온도를 높여 한 달 정도를 숙성한다. 유통기한은 약 90일 정도.

 

제조를 넘어 소비까지

신평양조장은 양조장 직영으로 서울 강남역과 가로수길에 ‘셰막’이라는 술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신평양조장에서 만들어지는 ‘백련 막걸리’나 백련 맑은술은 물론 이강주 등 다른 전통주와 수입 맥주, 사케 등도 함께 판매한다. 막걸리를 이용한 칵테일 등도 판매된다. 이에 맞는 다양한 퓨전 한식 안주도 판매되고 있다.

김동교 부사장은 “셰막에서는 백련 막걸리나 막걸리를 이용한 칵테일이 특히 젊은 층에게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제조는 물론 소비 채널까지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있는 것이다.

 

이슈 되면 고객은 따라온다

◀김동교 신평양조장 부사장.

백련 맑은술은 2014년 삼성그룹 신년 사장단 건배주로 사용되며 ‘삼성그룹 만찬주’로 불리며 연초 판매 특수를 누렸다. 김동교 신평양조장 부사장은 “3개월 정도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어 물량이 모자랄 정도였다”고 말했다. 약주 자체가 명절이나 제사철에 특히 인기인 술인데 연초 설 특수와 함께 이런 이슈로 호텔이나 기업은 물론 업장에서까지 찾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또한 그는 “연초의 이런 특수가 지나간 후에도 한 번 맛을 본 고객들을 중심으로 재구매율이 높아져 판매량에 약간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소비자가 제품에 대해 인식하면 한 번이라도 더 보게 되고 기억하게 된다는 말이다.

 





*백련 맑은술은

국내산 백미 100%와 백련 잎을 이용해 만든다. 예부터 사찰에서 내려 오는 곡차의 레시피를 재해석해 만들었다. 연잎을 가공‧발효해 생겨나는 특유의 향과 부드러운 첫 맛, 임팩트 있는 목넘김이 특징. 도수는 12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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