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빼고 내실 다져, ‘제2의 막걸리 붐’ 만들자

 

한류와 웰빙 기조에 맞물려 휘몰아쳤던 막걸리 열풍이 지난해부터 급격히 잦아들고 있다. 내수는 물론 수출까지 동반 부진하며 총체적 난국에 봉착한 모습이다. 통계청 기준 막걸리 출하량은 지난해 41만4550㎘로 전년대비 6.6% 감소했고 수출은 3,690만 불로 전년대비 30% 감소했다. 그토록 승승장구하던 막걸리가 부진의 늪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막걸리가 누렸던 그간의 인기는 외적 요인에 편승한 탓이 컸다. 우리나라에서 막걸리 붐이 일기 시작한 2005년 무렵 일본에서도 막걸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부담 없는 알코올 도수에 미용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며 한류 붐과 함께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 인기가 거꾸로 국내까지 번지며 한일 양국의 막걸리 시장은 탄력을 받았다. 웰빙 트렌드에 따른 건강식품 선호 분위기도 막걸리의 인기를 거들었다. 2011년 동일본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막걸리 수출 증가세는 정점에 이르렀다. 일본의 주류공장과 물류 인프라가 타격을 입으면서 발생한 유통매장의 빈자리를 막걸리가 대체한 것이다. 2008년 이후 3년 동안 막걸리 해외시장은 10배 이상 커졌다. 농식품 수출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호황기였다.

하지만 지진 피해를 입었던 일본의 주류생산과 물류 인프라가 복구되고 주류 트렌드 역시 저도주에서 무알코올 음료로 바뀌면서 막걸리는 점점 갈 곳을 잃게 되었다. 게다가 아베 정권의 우경화로 인한 일본 현지의 ‘반한 감정’과 엔저현상도 막걸리 수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이다.



막걸리 부진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막걸리 업계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다. 전국의 막걸리 제조 면허자 수는 약 850인, 막걸리 생산 업체는 약 500여개이다. 평균 종업원 수는 5명 미만으로 매출 10억 원 이상의 업체는 6%가 채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막걸리 업계의 영세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설이 낙후된 것은 물론 자금부족으로 인해 품질관리, 연구개발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다.

둘째는 막걸리 업계의 현실 안주 문제다. 특히 수출의 경우 막연히 한류에 의존하며 일본의 젊은 여성층에 편중된 소비시장을 다변화하지 못했다. 막걸리 전체 수출 국가 중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육박한다. 그만큼 일본 시장의 경기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국내 소비자들도 수입 맥주와 사케를 선호하는 취향 변화가 있었지만 막걸리 업체들은 시장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다른 주종과의 경쟁을 위한 시장 확대 노력 대신 막걸리 업체 간 가격 경쟁으로 점유율에만 매달렸던 것이다.

현재 막걸리는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당장의 출하량이나 수출실적 등 숫자의 등락폭만 가지고 위기를 논할 수는 없다. 비록 수치는 줄었지만 수년 전보다 시장 자체가 커졌기 때문이다. 소위 “거품”이 빠지고 시장이 안정기로 접어드는 단계라 할 수 있다. 다행히 막걸리는 일시적 유행을 넘어설 수 있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선 중장년층에 국한되었던 소비계층이 다양화되고 있다.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지만 막걸리바 등 전문점을 중심으로 젊은 층의 소비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일부 업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맛과 가격대의 막걸리가 출현하고 있다. 조금씩 다양성과 다변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이다.

막걸리 산업의 미래는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국민 주류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업계 전체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 우선, 대기업과 작은 양조장이 각자의 색깔을 유지하며 ‘상생’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업체 간 경쟁이 아니라 막걸리 시장 전체의 규모를 늘리는 게 급선무다. 대기업은 내수 시장 진작을 위해 젊은 층을 대상으로 홍보와 신제품 개발을 강화하고, 수출 확대를 위해 중국과 동남아 등 수출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 마침 올 2월, 중국이 수입 규제를 완화하면서 살균막걸리뿐 아니라 생막걸리의 수출 길도 열리게 되었다. 중국인의 입맛에 맞는 막걸리 개발 등 중국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지방의 소규모 양조장은 대기업과 차별화된 방법으로 내실을 다져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000여 종이 넘는 막걸리가 존재한다. 2001년까지 지역판매제한 제도에 묶여 양조장들이 해당 지역 내에서만 판매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강점도 생겼다. 지역특산물을 원료로 한 막걸리가 많이 생겼고 이는 자연스럽게 지역의 토속 문화와 결합하게 됐다. 생산 환경이 다르니 막걸리 맛이 각각인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렇게 단일화‧표준화되지 않은 고유의 맛을 지닌 막걸리의 특징을 개성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 지역만의 관광자원과 토속음식을 연계시켜 문화자원으로 특성화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농업과 제조, 서비스 산업이 결합된 6차 산업으로 진화해야 하는 것이다.

√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는 식품위생법 개정이다. 일반 식품제조업과 똑같은 수준으로 막걸리와 전통주 제조업을 관리할 경우 막걸리 산업은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크다. 막걸리를 비롯한 전통주 제조업체는 대부분이 영세한 데다 미생물을 통한 발효라는 제조 공정상의 특징이 있다. 이 특성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유연한 자세로 관리 감독할 필요가 있다.



현재 막걸리 시장이 주춤한 것은 외적 성장 요인이라는 거품이 빠지는 과정이다.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내실을 다지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이다. 이를 잘 풀어낸다면 다시 한 번 막걸리 르네상스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염대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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